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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30

[인터뷰텔링] 리챠드 프로헤어 대표 이기원 (3) 계란과 베지밀 [2편에서 계속] 리챠드프로헤어 대표 이기원 (3) 계란과 베지밀 결국 그는 한 달을 마저 채우지 못하고 방을 얻기로 결심했다. 월급을 전부 털어야 얻을 수 있는 월세 3만짜리 방이었다 또 다른 시작 중국집 쪽방에서의 더부살이는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 더러운 이불과 얹혀 지내는 불편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늦게 퇴근을 해도 함께 자는 배달원들의 눈치가 보였고, 더러운 이불 끝자락조차 그는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차라리 한뎃잠을 자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추운 방이었다. 스트레스와 영양부족으로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만 갔고 결국 그는 한 달을 마저 채우지 못하고 방을 얻기로 결심했다. 월급을 전부 털어야 얻을 수 있는 월세 3만짜리 방이었다. 천장도 낮고 방 크기도 자기 몸 하나.. 2023. 4. 15.
[인터뷰텔링] 리챠드 프로헤어 대표 이기원 (2) 꿈을 꾸었기에 걸을 수 있던 길 [1편에서 계속] 리챠드프로헤어 대표 이기원 (2) 꿈을 꾸었기에 걸을 수 있던 길 1980년대, 지금에야 많은 남성들이 미용분야에 진출해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남자가 헤어 디자이너를 한다는 건 쉽게 생각하기 힘들 때였다. 처음 가져 본 작은 꿈 어릴 적 동네에서 시작한 싸움은 학교로 이어졌고, '싸움'이라는 것은 점점 그에게 '싸움짱'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싸움짱'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럴만한 힘도 필요했지만, 용기도 필요했었다. 떨리고, 무섭고,... 그러나 용기는 축적되기 시작했다. 어려운 집안 환경때문에 남들에게 멸시당하는 것은 절대 참을 수 없다는, 그러려면 어디서든 대장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자존심이 싸움에서의 '용기'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사실 청.. 2023. 4. 5.
[인터뷰텔링] 리챠드 프로헤어 대표 이기원 (1) 벤츠의 꿈 리챠드프로헤어 대표 이기원 사장 리챠드프로헤어는 1990년 설립된 국내에서 초대형 헤어샾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전국에 약 50여 개의 지점을 운영 중에 있는 중견기업이다. 리챠드프로헤어의 설립자이며 대표인 이기원 사장은 헤어디자이너로서 그리고 헤어샾 경영자로서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매진하고 있다. 벤츠의 꿈 시간도, 돈도, 게다가 믿고 의지할 가족도 없었지만, 미용사가 되겠다는 소중한 꿈은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지하철, 그리고 가위 "어머, 저 사람 뭐야? 왜 저러지?" "대체, 뭐를 하는 거야?" 마지막 지하철은 터널을 빠져나와 불빛이 깜빡이는 저녁 풍경 속을 지나고 있었다. 열차 안에는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회사원과 얼큰한 술냄새를 풍기는 40대 남자,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젊은 연인들이.. 2023. 3. 25.
[인터뷰텔링]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5), 삶의 정석, 그 문제를 풀다 아무래도 힘들게 살아오다 보니까 많은 생각들을 해왔는데, 그런 가운데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겼어요 [4편에서 계속] 이정배 사장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3년간의 워밍업 그렇게 3년의 기간을 유예받은 이정배는 부지런히 업무를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회사라는 조직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설계팀의 업무는 자신이 이제까지 연구해 왔던 분야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연구실에서 하루하루 업무를 익혀가면서 그는 대학 2학년 때 민홍식 교수가 강조해 주셨던 얘기를 생각하며 무릎을 쳤다. 그랬다. 정말 다행스러웠다. 가급적이면 넓게 공부하라는 말씀말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기본을 충실하게 다질 수 있는 과목을 공부하라고 당부했던.. 2023. 3. 21.
[인터뷰텔링]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4), 새로운 도전, 반도체 설계 이후로 삼성은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도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죠 [3편에서 계속] 이정배 사장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마침내, 큰 보람 "이후로 서서히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정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설계 분야에서도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거라고 자부합니다." 물론, 삼성전자 내에 설계 파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의 설계는 오더가 내려오면 제덱에서 결정된 표준에 맞춰 시행착오 없이 정확히 그리고 빠르게 그려내는 것에 주력했지 차세대 제품에 대한 스펙을 결정하는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저희들은 이전 세대의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결과물 위에서 어찌 보면 편하게 일해왔다고 할 거예요. 제가 삼성전자에 들어올 때는 이미.. 2023. 3. 19.
[인터뷰텔링]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3), 마침내, 큰 보람 삼성전자에서 제시한 스펙이 효율적이라며 HP에서 지지를 하고 나선 것이다. 바싹바싹 타들어가던 압박감에 시달리던 이정배 박사는... [2편에서 계속] 이정배 사장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진공관의 원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흠..... 자네는 물리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전자공학과를 지원한 모양이군? 그런 학생들이 가끔 있지....."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그의 마음을 읽고 계셨을까? 아마도 3 지망에 물리학과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 짐작을 하신 모양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전자공학을 하다 보면 기초과목을 많이 들어야 할 거야. 물리학과에 가서 들어야 할 과목들이 많으니까...." 민홍식 교수는 그의 고민을 그렇게 친절하게 씻어내 주었다. 그 면접을 끝내고는 마침내 안심이 되었다. 비.. 2023. 3. 19.
[인터뷰텔링]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2), 그의 꿈, 그리고 "물리학과는 안된다" "정배야, 물리학과는 안된다" 부모님은 물리학과를 나와서는 취직이 어렵다는 말씀을 들으셨던 것 같다. [1편에서 계속] 이정배 사장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제덱, 그리고 응용문제 "무슨 소리야. 그것 때문에 제품 개발이 몇 달 늦어질 수 도 있는데..." "그래도 저희들 데이터에 의하면 훨씬 효율적이라서...." 이정배 박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자신은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을 뿐이었는데..., 한편으로 야단을 맞는 것이 억울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신제품 개발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는 말에는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원리를 이해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그리고 대학 내내 어찌 보면 큰 쓸모가 없을 것 같던 기초분야에만 관.. 2023. 3. 19.
[인터뷰텔링]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1), 수학의 정석, 그리고 삶의 정석 이정배 사장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은? '원리'와 '기초'를 알아야만 직성이 풀렸던 그는 '반도체 물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다듬어 가고 있다. 이정배 박사는 서울대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85학번이다. 이후 이정배 박사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설계팀장과 부사장을 거쳐, 현재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제12대 반도체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뿌리를 찾아서 인수분해 공식의 원리를 아십니까? "쿵. 쿵. 쿵" 누군가 무엇인가를 벽에다 찧고 있다. "쿵. 쿵. 쿵" 둔탁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묵직한 소리다. 무슨 소릴까? 작은 인기척까지도 또렷이 들릴 만큼 벽이 얇은 , 허름한 단층집이었다. 그의 가족들.. 2023. 3. 19.
[인터뷰텔링] 2023 WBC 이강철 감독 (5), 기아 타이거즈로...마침내 다시 일어서다 멀고 길었던 재기의 순간 그러나 기아로 온 뒤에도 재기의 순간은 쉽게 이강철을 찾아오지 않았다. 뭔가를 보여주려고 할수록 잘 되지 않았다. 그런 이강철의 모습을 보기가 안타까왔던지 어느 날 김성한 감독이 이강철을 불렀다. "강철아, 너 사실 여기 선수보다는 팀 융화하는 역할 차원에서 데려온 거다. 너무 잘 하려고 신경 쓰지 마라." 강철을 위로하기 위한 마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이강철은 그 말에 더욱 충격을 받고 말았다. 끝이 아니라고, 끝이 아니라고 그렇게 힘들게 견뎌왔건만 이젠 정말 끝인 건가 싶기도 했다. 야구선수가 실력이 아니라 팀의 융화를 위한 역할로만 존재한다니 비참하기도 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재기의 몸부림을 해보고 싶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 2023. 3. 13.
[인터뷰텔링] 2023 WBC 이강철 감독 (4), 삼성으로 부임한 김응룡 감독과 김성한 기아 감독 삶의 자극제.... 희망, 그리고 2군에서의 생활 힘들고 고달픈 2군 생활. 하지만 언젠가 꼭 다시 올라가고 말겠다는 욕심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만의 하나 정 일이 잘못된 대도, 설사 그곳에서 선수생명이 끝난다 해도 그게 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선수생활을 마치면 지도자 코스를 밟을 생각이었거든요. 그래, 여기서 선수를 관두게 된다면 내가 미리 여기서 2군 선수들을 접하고 그 생각들을 알아보는 기회로 삼자고 마음먹었어요. 2군에 있는 시간을 무의미하고 아깝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죠. " 사실, 2군에 있는 선수들 중엔 자신의 처지에 더 이상의 기대를 포기하고 그 생활 자체에 젖어 사는 이들도 많았다. 1군과 2군을 왔다 갔다하는 1.5군 선수들은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1군에 올라가고야 말겠다.. 2023. 3. 11.
[인터뷰텔링] 2023 WBC 감독 이강철 (3), 인생을 배운 2군시절과 이미지 트레이닝 뜻하지 않은 시련, 그리고 재기를 꿈꾸며 1999년, 하와이 전지훈련을 마친 뒤 무릎 전박 십자인대 파열 선고를 받은 이강철은 그 해 4월, 마침내 무릎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이젠 당신 몫인 거 알죠? 당신이 재활운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일찍 재기하거나 늦어질 수도 있으니까 이젠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노력은 이강철, 그에게 있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노력을 해서 되는 일이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열심히 노력했고 다행히 재활은 성공적이었다. 11월부터 재활운동을 끝내고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코리안 시리즈 우승에 목말라하던 삼성에서 3년간 8억이라는, 그때만해도 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의 거액으로 그를 원했다. 사실 89년에 프로에 데뷔한 후 이강철은 줄곧.. 2023. 3. 10.
[인터뷰텔링] 2023 WBC 감독 이강철 (2), 눈을 감으면 이루어지는 꿈 빛은 사라지고... "인대가 끊어졌다니까. 수술해야 돼." "수술... 않고는 안 되겠습니까?" "안 하고는 안 돼." "얼마나.... 오랫동안...." "6개월 이상. 한 1년은 걸릴 거야. 재활 시작하려면." 이강철은 멍하니 병원문을 나섰다. 직업의 특수성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나 쉽게 너무나 간단하게 무릎 부상을 선고하는 의사가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모든 꿈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는 순간이 아닌가. 물론, 부상이 처음은 아니었다. 대학 다닐 때에도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으로 전남대학 병원에서 연골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같은 의사에게서 또다시 무릎 부상 선고를 받은 것이다. 원래 근육을 한번 다치게 되면 꾸준히 근육강화 운동을 해도 점점 약해지기 마련이다. 이강철의 경우에는 근육이 약해.. 2023. 3. 10.
[인터뷰텔링] 2023 WBC 감독 이강철 (1), 세계월드베이스볼 클래식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이강철 감독은? 이강철 감독은 2005년까지 기아 타이거즈에서 현역 최고령 투수로 뛴 투수였다.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라는 전무후무할 것 같은 대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는 1996년 코리안 시리즈 MVP였다. 선동렬이 가지고 있던 대기록을 깨뜨리며 탈삼진 1,700개를 최초로 기록한 이강철 선수는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85학번이다. 2018년부터는 KT WIZ 감독으로 선임됐으며, 2022년부터는 2023 WBC, 세계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의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999년 전남대학 병원 강철은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발 아니기를.....아닐거야. 그래, 절대 아닐 거야....' 전날까지 컨디션이 좋았다. 몸이 훨훨 난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단지 무릎이 좀 결린다고.. 2023. 3. 10.
[인터뷰텔링] 홍혜걸, 이경미 (4), 목표점에 도달하는 하나의 길 회원수 40만 명의 인터넷 카페 카페를 나선 그들은 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늘은 깨질 것처럼 매끄럽고,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데이트하기 딱 좋은 날씨다. "처음엔 그저 재밌기만 했어요. 제 또래의 평범한 소녀들이 갑자기 '스타'가 되는 걸 지켜보면서, 거기에 내가 힘을 발휘했다는 게 신기하고 또 즐거웠어요. 그런데 덩치가 계속 커지다 보니 카페를 팔라는 제의도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함께 일을 해보자는 사람들이 밤낮으로 귀찮게 연락을 하기도 하고, 미심쩍어 거절하면 초상권 침해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질 않나.... 피곤한 일들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유명 연예기획사에서도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가 몇 번씩이나 들어왔어요.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학생이니까요. 대학에 간 이후로 모.. 2023. 3. 10.
[인터뷰텔링] 홍혜걸, 이경미 (3), 99일째 사라진 병사는? 진정한 사랑과 배려는? 자신의 탓이 아닌 일들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받아들이고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문제들이다. 그녀는 무척 해맑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런 고민도 없을 성싶은 표정으로 밝게 웃곤 했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엔 이토록 큰 짐이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 홍혜걸이 보듬어야 했었던 자신의 상황에서 느낀 아픔처럼 말이다. 이경미는 나이보다 성숙해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 생각은 이래요. 100일째 되는 날, 공주가 발코니 아래로 내려왔다 칩시다. 병사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한 약속이니 명색이 공주로서 책임을 져야겠다는 심정으로 말이죠. 일종의 계약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병사는 공주에게 선택권을 주었어요. 공주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찾아오.. 2023. 3. 10.
[인터뷰텔링] 홍혜걸, 이경미 (2), 시네마 천국 알프레도 할아버지의 병사와 공주 "병사와 공주 얘기 알아요?" 그가 뜬금없이 그녀에게 묻는다. "시네마 천국 봤죠? 알프레도 할아버지가 사랑의 열병에 걸린 토토에게 병사와 공주 얘기를 해주잖아요. 혹시... 어떤 얘긴지 기억나요?"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니 주스 잔에 꽂힌 빨대로 입을 가져간다. 병사와 공주? 시네마 천국을 본 사람들 중에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영화를 보며 사랑에 관한, 그리고 정답이 없는 그 질문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아주 옛날에 국왕이 연회를 열었어요. 국내의 미인들은 전부 초대를 받았지요. 그런데 국왕의 호위 병사들 중 하나가 공주가 지나가는 걸 보고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병사는 가슴앓이를 시작하게 돼요... 2023. 3. 9.
[인터뷰텔링] 홍혜걸, 이경미 (1), 병사와 공주 홍혜걸은? 의학박사이며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와 논설위원을 지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92년 언론계 최초로 의사출신의 의학전문기자가 되었다. 우리 국민들이 평균수명을 향상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홍혜걸은 서울대 의과대학 의예과 85학번이다. 저서로는 와 등이 있다. (2005년 소개글임) 2011년부터는 의학채널 의 대표로 있다. 이경미는? 2002년 2월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이라는 카페를 개설해 스타 등용문으로 키운 화제의 인물이었다. 5대 얼짱 카페를 통해 연예계로 진출했던 박한별, 구혜선, 이지영, 지우연 등이 있다. 이경미 양은 인하대 경영학부 05학번이다. 상큼한 아침 데이트 "안녕하세요?" 그녀는 바깥 날씨처럼 해맑게 웃었다. 수첩을 펼쳐 들고 있던 그는 서.. 2023. 3. 8.
[인터뷰텔링] 산악인 오은선 (4), 아...! 에베레스트 그리고 박무택 대장 [3편에서 계속] 산악인 오은선 무택이는 제가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암벽에 매달려 있었어요. 이미 숨진 상태였죠. 설맹 때문이었던 것 같았어요 로프에 숨진 채 매달려 있던...... 박무택..... 대장 정상을 얼마 앞두지 않아 북동릉 루트 가운데서도 가장 어렵다는 8,750미터의 두 번째 스텝을 올라서자마자,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에서 박무택 대장이 로프에 숨진 채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익숙한 형체의 사람, 그리고 그가 이미 죽은 박대장이라는 사실, 또 자신은 다가갈 수 없는 암벽에 매달려 있는 그를 보는 순간, 오은선은 오열했다. '나쁜 놈, 산이 그렇게 좋았단 말이냐.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나더라 어쩌란 말이냐." 쾌활한 성격의 박대장은 오은선을 선배로 모시면서 따르곤 했던 아끼는 후배였다.. 2023. 3. 7.
[인터뷰텔링] 산악인 오은선 (3), 한국 여성 최초의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 [2편에서 계속] 산악인 오은선 실수라고는 거의 한 적이 없었던 그녀가 까마득한 절벽으로 추락한 것이었다. 온 몸이 빙벽에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져 나갔다 세르파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간 베이스캠프 하지만 처음 하는 장사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음식점은 시작한 지 1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그녀는 산 위에서 음험한 기운과 푸른 공기를 반찬 삼아 미각의 충족이 아닌 에너지원 생성을 위한 밥만을 먹어왔기 때문이다. 음식점을 접으며 그녀는 파키스탄 K2 등반 제안을 받았고, 이 때는 이미 99년 산에게서 받았던 상처들은 까마득하게 잊은 상태였다. 현실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어미젖을 찾아 품 속 깊이 파고드는 아기의 본능처럼 산에게서 위안받고 싶다.. 2023. 3. 7.
[인터뷰텔링] 산악인 오은선 (2), 에베레스트 이후, 브로드피크 그리고 K2 등반으로 [1편에서 계속] 산악인 오은선 만약, 꼭 산엘 가야 한다면 그냥 사표를 내도록 하세요 꿈꾸던 에베레스트를 내려와 다시 현실로 그녀가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바로 주말 산행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근무 조건이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곳이 학습지 회사의 가정방문 교사였다. 에베레스트 첫 등정을 통해 오은선은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녀는 현실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훈련을 병행할 수 있는 학습지 교사라는 직업을 생각해 냈다. 학습지 교사는 주말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기에 좀 더 집중력 있는 훈련이 가능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이다. 열망은 심장을 타고 온몸을 흘러지나 이미 뜨겁게 에베레스트 봉우리에 가 있었지만, 내디딜 수 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다리와 가쁜 호흡은 그녀.. 2023. 3. 6.
[인터뷰텔링] 산악인 오은선 (1), 선택은 또 다른 포기를 의미한다 산악인 오은선은?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에 성공하였으며, 일본의 전설적인 여성 산악인 다베이 준꼬에 이어 세계 7 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한 아시아의 두 번째 여성 산악인이다. 산을 선택하기 위하여 그 외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던 오은선 씨는 수원대학교 전산학과 85학번이다. 오은선 씨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박사이며, 지난 2018년부터 국립공원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 있다. 오은선이 대학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찾은 것도 당연히 등산 동아리였다 꿈속에서 사는 사람 아파트 15층, 학생들에게 나눠줄 문제지와 학습지들이 잔뜩 들려 있었지만,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이미 수천수만 번 가파른 산을 오르고 내렸던 그녀.. 2023. 3. 6.
[인터뷰텔링] 배우 박중훈 (4), 헐리우드 도전, 한류의 길을 만들다 [3편에서 계속] 배우 박중훈 할리우드로의 진출은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야만 직성이 풀렸던 박중훈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미래의 K-컬처를 향한 새로운 도전 이렇게 자리에 앉아 찾아오는 기회를 기다리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찾아 나섰던 그에게 다시 한번 꿈을 좇을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할리우드 영화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에서의 감칠맛 나는 형사 연기는 할리우드의 거장 조나단 드미 감독의 눈에 띄었고, 드디어 그는 한국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대스타라 할지라도 할리우드에서는 아무도 몰라주는 신인배우로서 연기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도 상상외로 컸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이 박중훈.. 2023. 3. 5.
[인터뷰텔링] 배우 박중훈(3), <마누라 죽이기> 그리고 대마초 사건 [2편에서 계속] 배우 박중훈 '그래, 나는 쫓을 게 없으면 무기력해진다. 다시 시작하는 거야!' 정지된 시간 속으로 빠르게 오른 최고의 위치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도전이 권태롭게 느껴진 그는 '권태'라는 불안을 떨쳐버리려는 듯 대마초라는 잘못된 길로 자신을 몰아갔다.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에 언제나 힘겨웠던 삶. 그래도 사람의 사랑이란 그렇게 왔다가 가게 돼있는 것을 알고, 의연히 그리고 부단히 노력했던 그에게 일어설 힘조차 나질 않았다.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가끔 흘리지 않는 눈물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니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에 대한 꿈이 있다면 일어서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만큼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고,.. 2023. 3. 5.
[인터뷰텔링] 배우 박중훈 (2), 김혜수와 박중훈의 데뷔작 <깜보> [1편에서 계속] 배우 박중훈 아버지는 동국대나 중앙대나 그냥 문과대학을 지원하신 줄만 알고 계셨어요. 영화 로 시작된 꿈 꾸던 인생, 그리고 숨길 수 없었던 열정 하지만 그가 느꼈던 열등감은 단 한 부분에서만은 예외였다. 그것은 바로 '배우가 되겠다!'라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었다. 그 생각 하나만을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품고 살았던 그였다. 박중훈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단 하나의 무기를 강력하게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어떤 강한 끌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의 중심에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고, 그 꿈에 대한 강한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든 처음 만나는 사람이든 자신의 꿈을 열심히 이야기했고, 그.. 2023. 3. 5.
[인터뷰텔링] 배우 박중훈 (1), 첫 눈을 밟는 설레임으로 배우 박중훈은? 배우 박중훈은 20여년 가까이 한국 영화계의 큰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85년 영화 로 데뷔한 이래, , , , 등 박중훈이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라는 구분을 만들어 냈다.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85학번이다. 박중훈, 김혜수 주연, 그리고 두사람의 데뷔작, "깜보" 1985년 충무로 골목길 "야, 저기 국숫집 가서 단무지랑 김치 좀 얻어 와라!" 1985년 충무로 작은 영화사의 점심시간. 케케묵은 남자들의 땀냄새와 얼추 돌아가는 선풍기. 그 찜통의 작은 사무실 한켠에서 굵직한 남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벌떡 일어나서 문 밖으로 후다닥 나가는 사내가 있었다. 중대 연영과 신입생 박중훈이었다. '내일부터 라면이라도 좀 먹으려면 물 올려두고 먼저 단무지 좀 얻어와.. 2023. 3. 3.
[인터뷰텔링] 작곡가 김형석(마지막회) 나의 등을 밟고 올라 만리장성을 넘어라 [3편에서 계속] 작곡가 김형석 지독한 시련, 차라리 이 술잔이 독이라면... 1998년 겨울, IMF가 터진 것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났고, 사람들의 삶은 뿌리부터 휘청거렸다. 가요계에도 예외 없이 불황의 바람이 불었고, 때마침 엄청난 속도로 보급된 인터넷은 불과 1~2년 전의 가요시장을 먼 옛날의 꿈과 같이 아련한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만들었다. 우려는 했지만, 그와 계약한 기업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굴지의 대기업이었기에 설마 부도가 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기업은 도산을 했고 그 불똥은 당연히 그에게도 튀었다. 하루라도 빨리 잊어버리고 싶던 그 계약은 끝내 법적 소송으로까지 비화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한때 세상을 떠.. 2023.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