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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2), 그의 꿈, 그리고 "물리학과는 안된다"

by 드림비 2023. 3. 19.

 

"정배야, 물리학과는 안된다"
부모님은 물리학과를 나와서는 취직이 어렵다는 말씀을 들으셨던 것 같다.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삼성테크데이에서 발표하는 이정배 사장(이미지출처: 뉴스원)


[1편에서 계속] 

이정배 사장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제덱, 그리고 응용문제

"무슨 소리야. 그것 때문에 제품 개발이 몇 달 늦어질 수 도 있는데..."

"그래도 저희들 데이터에 의하면 훨씬 효율적이라서...."

이정배 박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자신은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을 뿐이었는데..., 한편으로 야단을 맞는 것이 억울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신제품 개발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는 말에는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원리를 이해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그리고 대학 내내 어찌 보면 큰 쓸모가 없을 것 같던 기초분야에만 관심을 보여왔던 이정배 박사의 진가가 발휘되는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1997년 봄, 미국. SDRAM 이후의 새로운 제품에 대한 표준규격을 결정하기 위한 제덱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제덱(JEDEC, Joint Electron Device Engineering Council: 미국 전자 공업 협회(EIA)의 하부조직으로, 제조업체와 사용자 단체가 합동으로 집적회로(IC) 등 전자장치의 통일규격을 심의, 결정하는 기구)에서 책정되는 규격이 국제 표준이 되므로 JEDEC은 사실상 이 분야의 국제 표준화 기구로 통한다. 

 

 

싱크로노스 디램(Synchronous-DRAM, SDRAM)이 막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게 1996년이었다. 제덱에서는 이제, 차세대 제품을 위한 표준을 만들어야만 했었다. 삼성전자에서도 관련 프로젝트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고, 에스디램 다음 제품의 표준을 정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1995년부터 삼성전자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정배 박사에게 제덱에 참가하여 표준을 결정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박사로서는 꽤 중요한 임무였다. 

"저희가 제안한 것은 디디알(DDR: Double Data Rate) 에스디램이었습니다. 당시 인텔이 주도하던 램버스 디램(Rambus DRAM)과는 차이가 있었죠."

실무자로 제덱에 참가하고 있던 이정배 박사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회사들, 특히 일본 회사들이 주장하는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더 빠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기술적인 선택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제품에 훨씬 더 효율적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꿈, 그러나  "물리학과는 안된다."

이정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물리학자가 되는 꿈을 갖게 되었다. 아무래도 가장 기초적인 학문을 하게 되면, 자신이 그토록 궁금해하는 여러 가지 원리들에 대해서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물리학이란 학문을 폭넓게 이해하고 연구하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이공계 학문의 정점에 서있는 물리학과에서는 여러 가지 실험과 연구를 통하여 원리들을 밝혀내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공계의 다른 일반적인 학과들보다는 훨씬 창의적이고 기초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학과들이야 그저 이런저런 계산이나 공식에 의지해서 문제들을 풀어내는, 그다지 흥미롭지 못한 과목들만 배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고민 없이 물리학과를 지원할 생각이었다. 

 

"정배야, 물리학과는 안된다."

부모님께서는 물리학과를 나와서는 취직이 어렵다는 말씀을 들으셨던 것이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 그는 가급적이면 부모님의 그런 걱정도 덜어드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기초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전공을 찾기 시작했다. 대학교의 각종 전공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던 그는 마침내 전자공학과에서 비교적 기초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과목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썩 내키지는 않았다. 


 

"진공관의 원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선생님, 진공관의 원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고등학교 기술시간이었다. 기술책에 복잡한 그림과 함께 나와있는 진공관의 작동원리에 대해 무척이나 알고 싶었다. 이정배는 얼마간을 그렇게 고민하다가 기술 선생님께 질문을 했던 것이다. 

"진공관이 어떻게 해서 작동하는지...."

"이정배, 그건 그냥 외우면 될 것 같은데? 책에 있는 대로 말이야."

선생님은 이정배의 복잡한 질문이 무척 귀찮으셨던 모양이었다. 물론, 이정배는 그에 관해서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이정배는 전자공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진공관 같은 거나 공부하는 과이겠거니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아버님의 말씀대로 졸업 후의 진로를 전혀 생각지 않을 수도 없었던 탓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전자공학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순수과학을 공부해서 학자가 된다는 것은 당시 어려웠던 가정 형편상 쉽게 생각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학력고사 시절에는 1 지망, 2 지망, 3 지망으로 자기가 가고 싶은 학과를 정할 수 있었잖습니까? 전 1 지망에 전자공학과를, 2 지망에 무기재료공학과를, 3 지망에 물리학과를 썼어요. 물론, 그 당시 제일 높은 점수를 요구했던 전자공학과, 물리학과에 상관없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점수였으니 의미 없는 2 지망, 3 지망이었죠. 비록, 3 지망이 될 가능성은 없었지만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던 거죠...."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원서를 제출한 뒤, 그는 면접을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정배는 그날 전자공학과 면접에서 그의 그런 아쉬움을 덜어주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민홍식 교수였다. 

 

[3편에서 계속]

 

 

[인터뷰텔링]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3), 마침내, 큰 보람

삼성전자에서 제시한 스펙이 효율적이라며 HP에서 지지를 하고 나선 것이다. 바싹바싹 타들어가던 압박감에 시달리던 이정배 박사는... [2편에서 계속] 진공관의 원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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