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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배우 박중훈(3), <마누라 죽이기> 그리고 대마초 사건

by 드림비 2023. 3. 5.

 

 

박중훈, 강수연 주연 <청춘스케치>


[2편에서 계속]

배우 박중훈

'그래, 나는 쫓을 게 없으면 무기력해진다. 다시 시작하는 거야!

정지된 시간 속으로

빠르게 오른 최고의 위치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도전이 권태롭게 느껴진 그는 '권태'라는 불안을 떨쳐버리려는 듯 대마초라는 잘못된 길로 자신을 몰아갔다.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에 언제나 힘겨웠던 삶. 그래도 사람의 사랑이란 그렇게 왔다가 가게 돼있는 것을 알고, 의연히 그리고 부단히 노력했던 그에게 일어설 힘조차 나질 않았다.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가끔 흘리지 않는 눈물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니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에 대한 꿈이 있다면 일어서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만큼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고,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데 쓰러져 죽어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문 손잡이를 굳게 쥐었다. 잠시 심호흡을 했다.

"흠......."

어느 누구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일 먼저 영화사 문을 열 때처럼 자신과의 많은 다짐과 약속들을 되새겼다. 'Thrill is not on the catch, but in the chase.'(스릴은 잡았을 때가 아니라 그것을 쫒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박중훈이 항상 되뇌는 말이었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말이다. 이제까지 그는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는 삶에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늘 무엇인가를 연구했고 찾아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기꺼이 즐기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듯이 언뜻 화려해 보이는 그의 명성 뒤에는 수많은 좌절과 고통이 있었다. <마누라 죽이기>를 촬영하던 95년 터진 대마초 사건. 최고의 스타였기에 사람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게다가 당시는 결혼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래, 나는 쫓을 게 없으면 무기력해진다. 다시 시작하는 거야!' 박중훈은 새로운 눈을 밟는 설렘을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걸어왔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가진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인가를 찾아서 부지런히 달려왔던 자신을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추스른 박중훈은 그 사건 이후 그가 다짐했던 것처럼 영화 <마누라 죽이기>로 그 해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인기스타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다시 한번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흐르는 물에는 자신을 비춰볼 수 없다

첫 영화 <깜보>로 데뷔한 그는 겨우 만 19살의 나이였다. 그 후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 그는 이후로도 <칠수와 만수>, <우묵배미의 사랑> 등의 영화에서 항상 비중있는 역할을 차지하곤 했다. 하지만 관객들이 자신을 주목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인생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일상은 반복의 연속이었고, 도대체 새로울 게 없었다. 자신이 소모되는 느낌이었고, 기능적으로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안주할 수도 있었다. 그만하면 배우로서의 생활도 수입도 더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흐르는 물에는 자신을 비춰볼 수 없는 법이었다. 미국 유학은 그런 그에게 작전타임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배우로서 한창 주가가 올라 있을 때였다. 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더욱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그 후 한 달 만에 미련 없이 유학길에 올랐다. 주변에서는 한참 인기가 있는 때였기에 만류를 하는 사람도 많았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첫눈이 내린 길을 찾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는 한국 배우 중에 영어로 대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을 거야' 박중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더구나 영화 출연 때문에 대학공부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도 있었고 지금 시간을 갖지 않으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기가 떨어질까 하는 걱정은 없었어요. 오래 달리기를 하면 어차피 결승점에서 만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중간에 힘 조절을 하기로 한거죠. 어차피 영화배우는 내 평생 업인데 유학 때문에 좌지우지될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갔다 와서 안된다면 한국에 남아있어도 짧게 끝나지 않았을까요?"

 

 

 

 

박중훈 최진실 주연 <마누라 죽이기>


<마누라 죽이기>

박중훈은 다시 한번 첫 눈이 소복이 내린 들판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첫눈을 밟는 기분은 무척 설레고 좋긴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눈 아래에는 물웅덩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자칫하면 큰 계곡으로 굴러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박중훈은 그래도 그 느낌이 좋았다. 이제까지 그가 걸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뉴욕대 대학원에서 연극교육학을 전공하며 굶주렸던 지식욕을 채우기 시작했다. 대학 내내 영화출연으로 허기를 느껴야만 했던 공부에 대한 갈증도 풀어낼 수 있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더불어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3년 여의 미국생활이라는 공백과 미혼에서 기혼 배우가 된 사실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울에 돌아온 그는 <투캅스>를 시작으로 다시 정상궤도를 찾았고, 그 다음 해에는 <게임의 법칙>과 같은 걸작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박중훈의 진가는 계속 승승장구하기만 했던 것에 있지 않았다. <인연>이나 <현상수배>, <아메리칸 드래곤>과 같은 영화는 흥행의 참패를 겪기도 했다. 한 영화의 실패는 배우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도 하지만, 정성을 다해 연기했던 작품이 외면받게 되는 것은 더 슬픈 일이었다. 어디에선가 '이제 박중훈 영화는 끝났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박중훈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그는 1999년 작품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란 뛰어난 영화로 다시 관객의 품으로 돌아왔다.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찾아오는 기회를 기다리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찾아 나섰던 그에게 다시 한번 꿈을 쫓을 기회가 찾아왔다.

첫눈을 밟는 기분은 무척 설레고 좋긴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눈 아래에는
물웅덩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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