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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배우 박중훈 (2), 김혜수와 박중훈의 데뷔작 <깜보>

by 드림비 2023. 3. 5.

 

 

배우 박중훈


[1편에서 계속]

배우 박중훈

아버지는 동국대나 중앙대나 그냥 문과대학을 지원하신 줄만 알고 계셨어요.

 

영화 <깜보>로 시작된 꿈 꾸던 인생, 그리고 숨길 수 없었던 열정

하지만 그가 느꼈던 열등감은 단 한 부분에서만은 예외였다. 그것은 바로 '배우가 되겠다!'라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었다. 그 생각 하나만을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품고 살았던 그였다. 박중훈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단 하나의 무기를 강력하게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어떤 강한 끌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의 중심에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고, 그 꿈에 대한 강한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든 처음 만나는 사람이든 자신의 꿈을 열심히 이야기했고, 그 말에는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는 어떤 힘이 있었다. 배우가 되겠다는 열망을 숨기거나 가슴속에만 간직한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박중훈. 그 당시 박중훈을 아는 친구들은 박중훈만은 꼭 영화배우가 될 것이라고 다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그는 분명하게 자신의 꿈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누구를 만나도 항상 배우가 되겠다는 얘기를 하고 다니던 그가 연극영화과를 진학하려고 마음 먹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아버지였고 자수성가한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학벌이 공무원 진급에 제한이 되는 현실을 겪으며 자식들에게 더 많은 기대를 걸었던 분이었다.

 

아버지는 그와 그의 형제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을 다니길 원했다. 엄한 아버지 때문에 사춘기 때는 그 흔한 소설책 한 권 읽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소년잡지를 빌려와 읽다가 불호령을 맞은 적도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알록달록한 색감이 아버지에게는 만화책처럼 보였던 까닭이었다. 참고서는 수십 권을 사주셨지만 그 외에 다른 책은 절대 용납하지 못하셨던 아버지. 그런 그가 아버지 앞에서 차마 연영과에 입학한다는 얘길 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배우 말고는 다른 건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그에게 아버지의 기대는 너무 벅찰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바람이 크다고 해서 어릴 때부터 품어 온 배우에 대한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배우는 고사하고 연영과를 지원하겠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처음 동국대 시험을 보고 다음 해 재수를 해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합격했어요. 아버지는 동국대나 중앙대나 그냥 문과대학을 지원하신 줄만 알고 계셨어요. 나중에 아시고는 '가라는 대학은 안가고 왜 학원을 갔냐'며 난리가 났었죠."

 

박중훈은 아버지의 그런 노여움 때문에 1년 넘게 아버지와 식사할 자리를 얻지 못했다. 학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관되었던 분이셨다. 그런데 대학은커녕 딴따라가 되는 들어보지도 못한 '학원'같은 곳을 가겠다고 나선 박중훈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아버지 세대에게 연영과라는 곳이 연기를 가르치는 학원 이상으로 생각될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 당시 박중훈과 그의 형제들에게는 참으로 엄하신 분이셨기에 아버지의 뜻과는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꿈이 너무나 분명했기에 그 꿈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교수가 되어야 한다"

제가 꿈이 없었거나 아니면 그냥 다른 길로 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었으면 모르지만 저는 분명했거든요......, 그렇다면 그 길을 제가 직접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어쩌면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자필 명함을 만들어서 엉뚱하게도 충무로 길목을 헤매고 다닌 것도 이런 그의 성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분명한 꿈이 있다면 자신이 직접 그 꿈을 이루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성격 말이다. 

"그런데 자식이 택한 길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셨던지, 아버지는 이왕 연극영화과에 갔으면 교수가 되라고 하시는 거예요. 고 3 때보다 더 공부하라고 채근을 하셨죠. 교수가 되라고.... 그래야 먹고 산다고....."

박중훈의 포기할 수 없는 꿈만큼 박중훈의 미래에 대한 아버지의 걱정도 크셨던 것 같았다. 

"제가 교수가 될 거면 뭐 하러 연영과를 갔겠습니까?"

 

영화 <깜보>를 찍으면서 의상들을 몇 벌씩 가지고 다녀야 했던 불편 때문에 소품으로 썼던 다 찌그러진 차 포니를 얻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 앞에서는 감히 내색 한번 하지 못했다. 대학생이 무슨 차냐고 불호령을 하실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 앞에는 그 차를 한 번도 세워두지 못하고 골목 너머에서 내려 집까지 한참을 걸어 다녀야만 했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자신의 꿈을 쫓아 열심히 뛰어가는 박중훈의 걸음 앞에서 어느덧 아버지의 가슴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가 몇 편의 영화를 찍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어 가족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박중훈을 이해해 주고 성원해 주는 분이 되었다. 물론, 그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극장에 전화를 걸어 애들 목소리로 표가 매진되었는지 확인하신 적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출연하는 영화표가 매진되었다고 하면 전화를 끊으시고는 소리치시며 좋아하시곤 했다니까요."

아버지 얘기도 그만의 어투로 맛깔나게 전달했지만 당시에는 아버지와의 사이를 좁히는 일이 그에게는 큰 숙제와도 같았다. 그러나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그가 성공한 후 남보다 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였기에 그는 더욱 마음이 시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지금도 숙연해진다. 아· 버 · 지. 그에게는 부르기만 해도 가슴 한편이 알싸해지는 그런 이름이었다. 

 

 

 

데뷔 동기 박중훈과 김혜수 (이미지 출처: 스타뉴스)

 

박중훈은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온 힘은 바로 배우가 되어보겠다는 꿈 하나였다고 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을 정말로 열심히 찾아 나섰던 박중훈 이었다. 그 만리장성 같았던 아버지의 마음을 녹여 자신의 지원자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그냥 앉아서 막연히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면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연락해 주겠다는 말로 어림없는 딱지를 놓았던 영화사를 설득한 것도, 그냥 앉아서 막연히 기다리는 성격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게 분명했다. 물론, 박중훈은 그 당시 영화사를 찾아가서 몇 개월동안 심부름을 했던 것이 깜보의 주연을 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땐, 그런 생각보다는 영화라는 것을 알고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 옆에서 무엇이라도 느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향해서, 첫눈의 설렘을 느끼기 위해서 달려갔던 그였다. 막연히 앉아서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고, 자신이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면 언제나 앞서서 달려나가야 했던 성격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런 설레임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박중훈에게는 그때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큰 아픔을 감내해야만 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중에 연락해 주겠다는 말로 어림없는 딱지를 놓았던 영화사를 설득한 것도,
그냥 앉아서 막연히 기다리는 성격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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