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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5), 삶의 정석, 그 문제를 풀다

by 드림비 2023. 3. 21.

 

아무래도 힘들게 살아오다 보니까 많은 생각들을 해왔는데,
그런 가운데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겼어요


이정배 사장
이정배 사장,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이미지 출처: 삼성전자 성반도체 이야기)


 

[4편에서 계속]

이정배 사장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3년간의 워밍업

그렇게 3년의 기간을 유예받은 이정배는 부지런히 업무를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회사라는 조직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설계팀의 업무는 자신이 이제까지 연구해 왔던 분야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연구실에서 하루하루 업무를 익혀가면서 그는 대학 2학년 때 민홍식 교수가 강조해 주셨던 얘기를 생각하며 무릎을 쳤다. 그랬다. 정말 다행스러웠다. 가급적이면 넓게 공부하라는 말씀말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기본을 충실하게 다질 수 있는 과목을 공부하라고 당부했던 얘기를 이정배는 그대로 따랐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정배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연구해 왔던 분야와 그가 앞으로 맡아야 할 반도체 설계 분야가 합치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에 그런 식으로 공부하지 않았었으면 3년은 부족했을 수도 있었겠죠.....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

 

그는 공부가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축구선수나 야구선수가 있듯이 공부에도 공부선수가 있는 것 같아요.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방법을 터득한 거죠. 공부하는 방법 말이에요.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정배 박사는 사각얼음이 담긴 주전자에 사들고 온 콜라를 전부 쏟아붓고, 친구들과 돌려마시던 기억, 그리고 콜라가 떨어지면 주전자에 남은 사각얼음을 양동이에 쏟아 넣고 돌아가면서 그 안에 발을 담그고 공부했던 84년의 뜨거운 여름을 떠올리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는 억지로가 아닌, 알아서 하는 공부를 할 줄 아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걸 더 좋아했어요. 여기저기서 괜히 상도 많이 타고 그랬어요. 항상 학교 대표로 뽑혀서 사생대회에 참가했었죠. 그래서 한 번은 내무부장관상도 받고... 그림만 그리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해졌어요."

그러나 그렇게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도 이정배는 본인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자신보다 훨씬 잘 그리는 친구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사생대회에서 자신이 받는 상들은 받지 못하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뭐 뛰어나게 그림을 잘 그렸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그럴싸하게 베껴 그리는 수준이었죠. 언뜻 보면 잘 그리는 것도 같았지만, 뭔가 색감을 내서 나만의 스타일을 갖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소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창의적인 나만의 그림 말에요. 그런데 제가 아는 친구는 그런 면에서 참 뛰어났던 것 같았죠."

이정배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리고 어쩌면 힘든 공부가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즐길 줄 알았던 것이다


 

삶의 정석

어느덧 그가 삼성에 입사한 지도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들이었다. 벌써 그는 많은 연구원들을 끌어 주어야 할 위치에 있었다

"저는 항상 새로운 연구원들이 들어오면 몇 가지를 얘기해요. 특히, 저희들이 하는 분야는 설계 쪽이기 때문에 작은 실수 하나라도 용납지 않습니다. 숫자 하나만 잘못되어도 큰돈이 손해가 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그가 후배 연구원들에게 강조하는 그 말들은 단순한 업무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이야기일 듯도 싶었다.

"저는 설계를 할 때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라고 얘기하죠. 최대한 간단하게...."

 

아마도 그가 살아오면소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내용인 듯싶었다. 항상 기본적인 원리와 이치를 생각하면 절대로 복잡해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런 원칙을 벗어나 주객이 전도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는 반도체 설계를 연구하면서 너무나 자주 느끼곤 하는 일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연이 허락하는 정밀성으로 만족하고 근사치만을 구할 수 있을 경우, 그 이상을 구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충고를 하곤 합니다. 사실,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일 자체에 빠져 헤매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겠죠. 그런데 그런 한계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항상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찬이기도 한 이정배 박사는 항상 그렇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유한성을 겸손하게 깨닫기 위해 애를 썼다. 제품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타이밍은 핵심적인 것이다. 그런 한계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연구과제를 설정할 때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문제였다


 

삶의 문제를 풀어내다

"그리고 저는 항상 중요한 것이 있다면, 즉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꼭 선택하라고 얘기해요.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끈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이뤄내야 하지 않을까요? "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나 생각보다는 주변의 평가에만 관심을 갖는 시대, 이정배 박사는 인기에 영합해서 자신의 꿈과 진로를 결정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고 인기란 반드시 흘러가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그리고 진로를 결정하는 것처럼 위험스러운 일이 있을까.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만의 신념이 부족한 탓일 게다

 

"저는 제 삶을 지탱해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기둥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신앙심이죠. 아무래도 힘들게 살아오다 보니까 많은 생각들을 해왔는데, 그런 가운데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겼어요."

원리를 이해해야만 했던 그 집요함은 이제 모든 것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으로 깊어지고 있었다.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고, 인기란 반드시 흘러가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그리고 진로를 결정하는 것처럼
위험스러운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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