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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배우 박중훈 (1), 첫 눈을 밟는 설레임으로

by 드림비 2023. 3. 3.

 

배우 박중훈은?

배우 박중훈은 20여년 가까이 한국 영화계의 큰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85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이래,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투캅스>, <나의사랑 나의신부>, <인정사정 볼것 없다>박중훈이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라는 구분을 만들어 냈다.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85학번이다.

 

박중훈&#44; 김혜수 주연 깜보
박중훈, 김혜수 주연 깜보


박중훈, 김혜수 주연, 그리고 두사람의 데뷔작, "깜보"

 

1985년 충무로 골목길

"야, 저기 국숫집 가서 단무지랑 김치 좀 얻어 와라!"

1985년 충무로 작은 영화사의 점심시간. 케케묵은 남자들의 땀냄새와 얼추 돌아가는 선풍기. 그 찜통의 작은 사무실 한켠에서 굵직한 남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벌떡 일어나서 문 밖으로 후다닥 나가는 사내가 있었다. 중대 연영과 신입생 박중훈이었다. '내일부터 라면이라도 좀 먹으려면 물 올려두고 먼저 단무지 좀 얻어와야겠네.' 그래도 히죽히죽 미소를 잃지 않은 그는 아래에 있는 국숫집으로 휑하니 뛰어갔다. 그리고는 얼마 후 단무지 한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아주머니가 김치는 모자르다고 단무지만 조금 주시던데요."

숨이 가라앉기도 전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쌩긋 웃는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식어버린 라면 국물을 단번에 마셔 버렸다. 

"됐다. 그래도 그 녀석 재빠르구만. 많이 먹어라."

사람들은 그새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중훈은 불어버린 라면을 수저로 조심스레 떠먹었다.

"중훈 씨, 그거 다 드시면 은행에 가서 돈 좀 찾아다 주세요."

휴지로 입을 닦던 사무실 여직원은 통장을 건네주고는 쌀쌀맞게 자리를 떴다.

"네, 이거 설거지하고 다녀올게요."

 

그의 이런 생활은 벌써 6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물론,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필 명함을 들고 하루에 몇 시간씩 충무로 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퉁퉁 불은 라면을 후루룩 먹어치우곤 했던 것이다. 사실, 명함이라고 해봐야 손바닥만 하게 오린 종이 위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자기가 집에 있을만한 시간을 표시해서.... 핸드폰이 없을 때니까) 볼펜으로 적어 넣은 것이었지만.

 

"깜보 오디션이 있다길래 갔는데, 나중에 연락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냥 가라고 하기가 미안하니까 했던 말인데, 나는 그걸 사실로 알아들은 거에요...(웃음) ...뭘 몰라도 한참 몰랐죠.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영화사로 찾아갔던 거죠. 그런데 합격이 안 됐다고 하길래 그냥 아무 일이라도 하겠다고 그렇게 거기서 개긴 거죠. 시키는 일이면 뭐든지 다하겠다고...(웃음)... 아마 그 사무실에서도 웃긴 놈 다 보겠다 싶었겠죠."


 

영화  <깜보>

그가 그렇게 조잡스럽게 보일 수 있는 명함을 만들었던 까닭은 혹시 영화계 사람을 만난다면 캐스팅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또 영화계에 진출한 선배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한 명씩 돌아가며 방문하기도 했었다. 반겨주는 사람은 없어도 찾아갈 사람은 많았던 것이다.냉랭한 반응에 지칠 때도 많았지만 기회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랴. 그는 매 순간 마음을 다져먹으며 그렇게 6개월 이상을 충무로 거리에서 살았던 것이다. 온갖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면서도 싫은 소리는커녕 특유의 표정으로 주변에 웃음꽃을 피워내던 스무 살 박중훈의 첫 영화 <깜보>는 그렇게 가까워져 왔다.

"야, 넌 뭐하고 싶어서 학생이 학교도 안 나가고 아침부터 영화사에 출근이냐?"

책상에 다리를 올려두고 담배를 피우던 감독은 구석에서 신문 정리를 하던 그에게 물었다.

"배우 하고 싶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반갑고도 우렁찼다.

"야, 임마, 너 연영과라면서? 그럼 학교 가서 배우고 와. 왜, 여기서 세월 보내냐."

감독은 말이 끝나자 답답하다는 듯 담배를 깊게 빨았다.

"제가 중앙대인데요. 학교 들어가니까 연영과 취업률이 3%도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은 못할 거 같고, 또 한 번은 택시 타고 흑석동에 가는데 택시 아저씨가 연영과 선배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연영과가 잘되면 좋은 거지만 안되면 할 게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 박중훈은 그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을 웃기는 사람이 되었다. 춤을 추라면 춤을 추었다. 영화 속 대사들도 곧잘 받아서 흉내를 내곤 했다. 영화사 여직원들이 해야 하는 심부름까지도 도맡았다. 

"아마도 그 당시 몇 개월동안 깜보의 주연배우를 찾지 못했던 것 같았어요. 저야 물론 깜보의 캐스팅은 끝난 줄 알았기 때문에 그거 하려고 거기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 날인가 저 녀석을 한번 시켜봐?라는 생각이 드셨던 가봐요."

"......, 그럼... 한번 찍어보자."

장난처럼 말을 하고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이황림 감독은 바로 일어서서 나갔다. 그러나 그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고, 20살짜리 사내는 영화 <깜보>에 캐스팅이 된 것이다. 김혜수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깜보의 이황림 감독은 그렇게 박중훈을 선택했고, 박중훈의 연기 인생을 그렇게 막을 올렸다. 

 


예술가의 끼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이며 영화를 본 관객들이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드는 배우. 그는 무대에서 '광대'이기를 자처했다. 모두들 박중훈을 '웃기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탓에 그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괜히 눈치를 보기도 했다. 정작 그는 아무렇지 않은데도 웃기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사람들은 웃기는 배우 박중훈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박중훈은 영화 <깜보>로 데뷔한 후 다작을 해온 배우다. 그 가운데에는 <우묵배미의 사랑>, <게임의 법칙>,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걸작도 많았다. 그는 지금까지 대략 서른 두 편이라는 작품에 출연해 왔다.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불후의 명작>이나 <세이 예스> 등에서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는 코믹 배우로는 단연 최고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항상 반쯤 웃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영화에서처럼 일상에서도 좌중을 제압하는 '오락부장' 역할을 해왔다. 그는 실제로 초등학교 때부터 학창 시절 내내 오락부장을 도맡아 했다. 사실 남을 웃긴다는 건 결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재주는 아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언변과 남다른 끼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열등감이 많았던 학생이라고 했다.

 

 

"성적도 반에서 중간 정도였고, 운동도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집안 형편은 가난한 편은 아니었지만, 제가 다니던 용산고등학교가 당시 내로라하는 부잣집 아들들이 대부분이라 당시 어린 나이로서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꼈죠. 게다가 키도 큰 편이 아니었고,...... 뭐 그런 이유들 때문에 쓸데없는 열등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가 느꼈던 열등감은 단 한 부분에서만은 예외였다.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이며 영화를 본 관객들이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드는 배우,
그는 무대에서 '광대'이기를 자처했다

 

 

[인터뷰텔링] 배우 박중훈(2), 김혜수와 박중훈의 데뷔작 <깜보>

[1편에서 계속] 영화 로 시작된 꿈 꾸던 인생, 그리고 숨길 수 없었던 열정 하지만 그가 느꼈던 열등감은 단 한 부분에서만은 예외였다. 그것은 바로 '배우가 되겠다!'라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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