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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리챠드 프로헤어 대표 이기원 (1) 벤츠의 꿈

by 드림비 2023. 3. 25.

 

리챠드프로헤어 대표 이기원 사장

리챠드프로헤어는 1990년 설립된 국내에서 초대형 헤어샾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전국에 약 50여 개의 지점을 운영 중에 있는 중견기업이다. 리챠드프로헤어의 설립자이며 대표인 이기원 사장은 헤어디자이너로서 그리고 헤어샾 경영자로서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매진하고 있다. 

 

 

리챠드 프로헤어 이기원사장
리챠드프로헤어 이기원 대표 (이미지출처: 네이버 이미지)


벤츠의 꿈

 

시간도, 돈도, 게다가 믿고 의지할 가족도 없었지만,
미용사가 되겠다는 소중한 꿈은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지하철, 그리고 가위

"어머, 저 사람 뭐야? 왜 저러지?"

"대체, 뭐를 하는 거야?"

마지막 지하철은 터널을 빠져나와 불빛이 깜빡이는 저녁 풍경 속을 지나고 있었다. 열차 안에는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회사원과 얼큰한 술냄새를 풍기는 40대 남자,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젊은 연인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바삐 가던 그들이 갑자기 한 사내의 이상한 행동을 보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사내도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과 웅성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휴지를 똑같은 규격으로 자르고 있는 가위에 집중되어 있었고, 입은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벤츠, 벤츠를 타는 디자이너...."

 

180㎝는 족히 넘을 만한 큰 키에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날은 그래도 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그나마 나았다. 하루종일 미용실에서 선 자세로 일을 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만은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앉을자리가 간절한 건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통 하루 12시간 이상을 격무에 시달리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때만이 유일하게 혼자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당장에라도 잠에 빠져들 만큼 피곤했지만, 그는 늘어지는 몸을 다시 추슬렀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두운 창 밖 풍경에 대비되어 열차의 형광등은 더욱 밝게 느껴졌다. 그 불빛에 선명하게 반사되는 것이 있었다. 그가 꺼내든 건, 바로 가위였다. 

 

다른 주머니에서는 한 움큼 말아 준비한 휴지를 꺼냈다. 그리고 가위를 들고 휴지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가 앉아 있는 자리 앞에는 어느새 일정하게 잘라진 휴지조각들이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공을 들여 가위로 휴지를 잘라내는 데 열중하는 남자, 그는 곧 내려야 한다는 것조차, 내려야 할 역이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수척한 표정을 지은 채 가위로 휴지를 잘라내는 그의 모습은 얼핏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정도 였다. 하지만 그것은 꿈을 향한 무서운 집념에 다름 아니었다. 시간도, 돈도, 게다가 믿고 의지할 가족도 없었지만 미용사가 되겠다는 소중한 꿈은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2004, 리챠드 왕국

2004년, 11개의 커다란 고급 매장과 질 높은 서비스로 한 번 고객을 영원한 고객으로 만들고 있는 리챠드 프로헤어. 천안 미용 수요의 절반 이상을 책임져, 지역 내에서는 '리챠드 왕국'이라 불릴 정도다. 이곳은 벽면이 온통 거울로 뒤덮인 골드 앤틱한 인테리어에 흥겨운 음악, 마치 미용실이 아니라 잘 꾸며진 대형 나이트클럽을 연상케 한다. 가장 놀라운 건 단일 층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미용실이라는 점이다. 전체 매장에 350여 명의 직원(2023년 현재 1,100여 명, 잡코리아 기업정보)을 통솔하고 있는 이기원 사장. 이제 원조격인 300평 크기의 3호점에는 다른 미용실에서 오는 외부견학이 줄을 이을 정도다. 지난 7월(2004년)에 오픈한 10호 대전점도 대전에서 가장 큰 200평 규모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키워낸 사람이 바로, 지하철에서 가위 연습을 하며 헤어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던 젊은이다. 이기원 사장은 이제 중소기업 못지않은 꽤 큰 규모의 미용사업을 이룩해 낸 것이다. 이제 그는 사업도 성공했고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늘 그 옆을 지켜주는 아내와 아빠처럼 멋진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딸, 그리고 어려서부터 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자란 아들도 있다. 그는 이젠 혼자가 아니다. '홀로' 임을 가장 두려워하던 아이에서 '어울림'을 강조하며 다른 매장보다 이직률을 가장 적게 만든 사람 이기원. 그가 만든 성공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어린아이 이기원을 만나보자.


 

나는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이에겐 너무 창피해서 두려운 것이 있었다. 학부형 모임에 나오시라는 담임 선생님의 가정 통신문. 부모와 손잡고 뛰어야 했던 운동회 날, 김밥을 제대로 싸갈 수 없었던 소풍 날, 그리고 오후에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 아이는 오늘, 혼자 교실에 앉아 있다. 수업이 끝날 즈음,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교실 창은 금세 부옇게 김이 서렸고 그 사이로 우산을 든 엄마들이 하나 둘 교문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의 눈이 하나씩 창 밖으로 돌아갔다. 자신을 찾아온 엄마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독 슬퍼 보이는 한 아이만은 창 밖의 광경을 애써 외면하고는 책상 위로 시선을 떨구었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와~'하고 쏟아지듯 교실을 빠져나갔다. 어느새 교실은 텅 비고 이제나 저제나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며 애를 태우는 아이들과 청소를 하는 아이들 몇 명만이 남았다. 어린 그도 그제야 무겁게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빗줄기는 어느새 더욱 강해져 있었다.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곧 쏟아지는 비 속으로 몸을 내맡겼다. 온몸에 비를 맞으며 묵묵히 걸어가는 아이는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아이에겐 원망도, 서러움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 그러나 어린 그에게 창피함이 있었다. 아이에게 우산을 가져다줄 엄마, 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지어줄 엄마가 없어도 괜찮았다. 언젠가부터 알게 된 '당연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겐 부모와 형제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한순간 스쳐 지나간 백일몽에 불과했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7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시고 얼마 후 어머니는 재혼을 했다. 나이 터울이 지는 누나가 있었지만 일찍 세상을 등졌고, 큰 형은 진작부터 타지로 나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 남은 혈육이라고는 둘째 형뿐이었다. 하지만 형에게도 그를 챙겨줄 만한 여력은 없었다. 어린 그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어려서부터 철저히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누나의 죽음을 겪었던 탓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난히 겁도 많았죠. 하지만 그래서는 나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늘 대장을 도맡아 했던 건 두려움을 이기려는 나 자신과의 싸움 같은 것이었죠." 

 

 
그는 어려서부터 철저히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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