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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산악인 오은선 (3), 한국 여성 최초의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

by 드림비 2023. 3. 7.

 

 

산악인 오은선 (3)
산악인 오은선, 생명과 죽음의 2중주


[2편에서 계속]

산악인 오은선

실수라고는 거의 한 적이 없었던 그녀가 까마득한 절벽으로 추락한 것이었다.
온 몸이 빙벽에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져 나갔다

 

세르파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간 베이스캠프

하지만 처음 하는 장사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음식점은 시작한 지 1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그녀는 산 위에서 음험한 기운과 푸른 공기를 반찬 삼아 미각의 충족이 아닌 에너지원 생성을 위한 밥만을 먹어왔기 때문이다. 음식점을 접으며 그녀는 파키스탄 K2 등반 제안을 받았고, 이 때는 이미 99년 산에게서 받았던 상처들은 까마득하게 잊은 상태였다. 현실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어미젖을 찾아 품 속 깊이 파고드는 아기의 본능처럼 산에게서 위안받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에 그녀는 K2 등반을 어렵지 않게 결정했다. 


 

생명과 죽음의 2중주,  "시체였어요."

쉬러 다녀오겠다는 과년한 딸의 말에 이제는 부모님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끊임없이 그녀의 육체와 정신을 뒤흔들고 시험하는 산이었지만, 부정할 수 없이 그녀에게 있어 산은 안식처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안식처에서 죽음의 위기를 목도해야만 했다. 마지막 캠프까지 올랐을 때, 함께 산행한 대원이 추락했던 것이다. 잔잔했던 날씨가 급작스럽게 돌변했고, 오랜 산행으로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수색 작업도 하지 못한 채, 대원들은 서둘러 하산 준비를 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정상에 올랐던 산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야 하는 발걸음은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다. 더욱이 아이젠을 착용한 상태라 발걸음 하나하나에 최대한 신경을 써야 했지만 신경은 발끝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그 순간이었다. 실수라고는 거의 한 적이 없었던 그녀가 까마득한 절벽으로 추락한 것이었다. 온 몸이 빙벽에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져 나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긴 순간이기도 했다. 다른 대원들은 미쳐 손 쓸 새도 없이 그녀가 추락하는 것을 발을 동동거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은선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갖고 있던 바일의 피크로 제동을 걸어 빙벽을 찍어댔던 것이다. 하지만 떨어지는 몸에 가속력이 붙어 피크는 힘없이 빠졌고, 그렇게 다시 찍어대기를 수십 번. 바람이 불어 쌓인 눈더미를 만나서야 무섭게 굴러 떨어지던 몸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그것은 오은선이 '산'만을 위해 살아온 노력이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결과였다. 

 

보통의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품어 어미가 될 나이에 그녀는 여전히 험난한 대지의 품에서 날카로운 외면을 당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혹자는 그녀에게 물어온다. 생명을 내어놓는 위험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산에 올라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그녀는 너무도 고요한 눈으로 바람에 깎인 치아를 드러내며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의 위험을 껴안고 살지 않나요? 집 밖으로 나가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는 교통사고에 밤길 강도에, 또 집에 있으면 불이 나기도 하고,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들, 그것뿐이겠어요? 일하다가 과로사 하는 것도 다반사인데, 죽음 자체를 옆에 두고 사는 건 모두가 같은 거 아닐까요?"

 

 

 

죽음에 대한 공포조차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산에 대한 열망을 식힐 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답할 수 있는 것은 K2 등반 때,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는 위험에 처했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봤기 때문이란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한 그것. 과연 K2에서 오은선이 봤던 건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것은 사람의 시신이었다.

"시체였어요."

고글을 쓰지 않으면 시력을 잃을 정도로 눈부신 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앉아 있는 모습의 외국인 시신을 봤다. 햇빛 때문에 얼굴은 썩어버리고 머리 가죽과 머리카락만이 남아 그가 외국인임을 겨우 알게 해 준 시신이었다. 그가 올라오면서 신었을 신발에는 발목까지 썩어 있는 발이 담겨 있었다. 시신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라 머리칼 끝까지 쭈뼛 서도록 소름이 끼쳤다. 이상하게도 그날, 또 다른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탈진한 상태로 엎드려 죽어간 외국 사람의 시신이었다.  

"저 사람을 사랑했던 가족과 친구들, 그들은 그 사람의 시신이 여기 이렇게 있는 걸 알고 있을까 생각하니 더욱 처연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산악인이라면 죽음의 사신 앞에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이기에 오은선은 굳이 시신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죽은 사람의 얼굴이 어찌나 평온해 보이는지 마치 눈을 감은 채 산을 음미하는 것만 같았다. 죽는 순간까지 고통스러웠을 테지만, 산악인의 고향, 그들 각자가 그토록 원하던 곳에서 생을 마감했기에 덜 아쉬울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산은 그렇게 그 품에 영원히 안긴 이들을 통해 오은선에게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는 방법을 깨우쳐 주고 있었다. 생명과 죽음의 이중주를 들려주면서 말이다.


 

엘브루스, 매킨리, 아콩카과 그리고 마침내 에베레스트

큰 사고를 겪었음에도, 8,611미터의 K2 등반은 그녀가 선택한 길을 멈추지 않겠다는 설렘과, 행복을 찾아 계속 도전해 가겠다는 의지를 굳게 해주었다. 위안과 치유, 그리고 생명력이라는 매력적인 힘을 발산했던 산은 더 많은 도전을 해가는 그녀에게 위협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주면서 그녀를 단련시키고 키워준 것이다. 그녀는 다시 어질러진 자신의 방으로 돌아 왔다. 긴 산행을 떠날 때마다 방을 어질러 놓고 가는 게 그녀의 습관이자, 징크스와도 같은 것이었다. 산행에 필요한 정보들을 가득 널어둔 방. 방을 어지르고 가야만 무사히 다시 내려와서 그 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떠나면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아 그렇게 한다고 했다.

 

이제 산은 그녀에게 활짝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녀는 2002년 유럽 최고봉 엘브루스를 시작으로 2003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 2004년 1월에는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를 무난히 올랐다. 그리고 2004년 5월 20일, 현지 시간으로 11시, 마침내 오은선은 8.848미터 에베레스트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한국 여성 최초의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을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한국 여성 최초라는수식어만큼 그녀는 산에 있는 생명과 죽음의 길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사실, 처음부터 단독 등정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현지에서 미리 고용한 세르파 한 명이 있었지만, 그가 받아야 할 산소통과 레귤레이터 등의 장비가 제대로 도착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혼자서 등정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베이스캠프까지 차가 들어가야 몸이 자연스럽게 고소에 적응이 되는데 중간에서 시작하니 오히려 더욱 힘들었다. 에베레스트는 그녀가 네 번째로 도전한 최고봉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꽂고 환하게 웃어야 했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입에서는 '무택아, 고맙다, 고맙다. 는 말만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마침내 오은선은 8.848미터 에베레스트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한국 여성 최초의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을 이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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