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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2023 WBC 이강철 감독 (4), 삼성으로 부임한 김응룡 감독과 김성한 기아 감독

by 드림비 2023. 3. 11.

이강철 감독과 박병호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이강철 감독과 박병호 선수

 

삶의 자극제.... 희망, 그리고 2군에서의 생활

힘들고 고달픈 2군 생활. 하지만 언젠가 꼭 다시 올라가고 말겠다는 욕심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만의 하나 정 일이 잘못된 대도, 설사 그곳에서 선수생명이 끝난다 해도 그게 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선수생활을 마치면 지도자 코스를 밟을 생각이었거든요. 그래, 여기서 선수를 관두게 된다면 내가 미리 여기서 2군 선수들을 접하고 그 생각들을 알아보는 기회로 삼자고 마음먹었어요. 2군에 있는 시간을 무의미하고 아깝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죠. "

사실, 2군에 있는 선수들 중엔 자신의 처지에 더 이상의 기대를 포기하고 그 생활 자체에 젖어 사는 이들도 많았다. 1군과 2군을 왔다 갔다하는 1.5군 선수들은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1군에 올라가고야 말겠다는 욕심으로 열심히 운동을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1군에 올라갈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2군 생활 그 자체에 젖어들어 사는 것이다. 

"너 이렇게만 살래? 그래도 열심히 해서 1군에 한번 올라가 뛰어 볼 생각도 해봐야 하지 않겠니?"

라고 말한대도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하면 뭘 해요? 열심히 해도 올라오라고 부르지도 않는데. 그나마 1.5군들은 한 번씩 올라가니까 그때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하는 재미라도 있지. 우리는....."

 

이강철은 그런 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열심히 운동하고 있긴 했지만, 언제 1군에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점차 현실을 받아들이고 안주하려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안주할 수 없었다. 멈춰 서 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2군 생활에 젖어사는 그들에게 '잘난 척하더니 저도 어쩔 수 없네'란 비난을 받기 싫었다. '열심히 노력하더니 결국 재기하는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희망의 자극제가 되고 싶었다. 서른다섯....사회인으로선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야구선수로서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였다. 팀 성적이 안 좋을 때마다 팀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이유로 혹은 세대교체를 위해 어린 선수를 키워야 한다는 명목으로 늘 방출의 위험에 알몸을 드러내야 하는 그런 나이였다. 그 나이에 2군까지 추락했지만, 노력하면 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을 믿고 광주에서 대구까지 따라와 준 아내와 딸아이를 볼 면목이 없었다. 아내라고 이강철, 그를 비난하는 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 아내였다. 그 자신만큼 속상해할 아내라는 걸 잘 알기에 그는 애써 아내를 다독여 주었다.

"너무 속 끓이지마. 야구하면서 해 볼 것은 다 해봤으니까. 우승도 해보고 코리안 시리즈 MVP도 해봤으면 됐어. 더 이상 안 좋은 일 있겠어? 그러니 앞으론 좋은 일만 있을 거야. 그렇게 아내의 마음을 다독이곤 했다.

 

뛰고 싶다....한 번만이라도 더 뛰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애써 마음의 정리를 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도 야구에 대한 미련은 남았다.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완벽하게 기회가 온 상태에서 야구를 하고 싶었다. 10게임이면 10게임, 아니 단 한 게임에서라도 아무리 난타를 당한다 해도 투수교체 없이 마음껏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그 뒤라면 은퇴를 하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른 욕심은 다 끊고 포기할 수 있어도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그 야구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강철 그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피눈물 나게 뛰고 또 뛰었다. 그러다보니 기회가 생겼다! 해태에서 오랫동안 모시고 있었던 김응룡 감독이 삼성 감독으로 부임한 것이다. 

 

2001년 1월의 일이었다. 삼성 동계훈련 캠프였던 애리조나 캠프에 그때 막 일본에서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선동렬이 들렀다. KBO 홍보위원으로 각 구단의 캠프를 돌며 투수진 지도를 도와주던 선동렬이 훈련이 끝난 후 가만히 그를 불렀다. 

"강철아, 감독님이 너 볼 좋다고 칭찬하시던데?"

"진짜요? 형?!"

"그래, 임마. 감독님이 너 엔트리도 못 들 줄 알았는데 던지는 공보니까 아주 좋다고 하시더라. 너 좀만 더 열심히 하면 되겠다. "

'아, 인정을 받았구나. 기회가 올 수도 있겠구나'라는 희망이 이강철의 가슴에서 다시 불붙었다. 마침 시범경기에서도 성적이 괜찮았다. 시범경기의 3번째 게임에 선발로 나가 8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재기했다!'라고 말해 줄 정도로 좋은 시합이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질 것만 같았다. 손만 내밀면 그 기회를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다음 선발로 나간 두 게임을 생각만큼 잘 소화해 내지 못한 이강철은 그 다음부터 중간계투로 역할이 바뀌게 되고 말았다. 

"실망했죠. 많이....할 수 있는데.... 아, 정말 잘할 수 있는데.... 하면서도, 잘 안되니까 좌절이 되더군요. 이젠 정말 이렇게 끝나는구나...."

 

희망의 싹

벌써 몇 번째인지 몰랐다. 끝일지도 모른다는 상황에 몰려도 늘 번번이 희망의 싹을 틔워내 보았지만 그 싹은 채 꽃도 피지 못한 채 여전히 싹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재기를 위한 마지막 기회가 이강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즈음 해태가 기아로 인수되었다. 김성한 감독이 신임 감독으로 내정되었고, 김성한 감독은 마침 일본 활동을 접고 귀국하는 이종범과 함께 새로운 구단 기아 타이거즈의 구심점 역할을 맡길 인물로 이강철을 택한 것이다. 

 

 

[5편, 마지막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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