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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리챠드 프로헤어 대표 이기원 (2) 꿈을 꾸었기에 걸을 수 있던 길

by 드림비 2023. 4. 5.

 

[1편에서 계속]

리챠드프로헤어 대표 이기원 (2)

 

리챠드프로헤어
리챠드프로헤어 대표 이기원(이미지출처: 네이버 블로그)


꿈을 꾸었기에 걸을 수 있던 길

 

1980년대, 지금에야 많은 남성들이 미용분야에 진출해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남자가 헤어 디자이너를 한다는 건 쉽게 생각하기 힘들 때였다. 

 

처음 가져 본 작은 꿈

어릴 적 동네에서 시작한 싸움은 학교로 이어졌고, '싸움'이라는 것은 점점 그에게  '싸움짱'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싸움짱'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럴만한 힘도 필요했지만, 용기도 필요했었다. 떨리고, 무섭고,... 그러나 용기는 축적되기 시작했다. 어려운 집안 환경때문에 남들에게 멸시당하는 것은 절대 참을 수 없다는, 그러려면 어디서든 대장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자존심이 싸움에서의 '용기'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사실 청소년기를 거치며 짱을 해야만 그나마 끼니라도 때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싸움질을 하고 말썽을 일으키면서도 학업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에게 점점 꿈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도 마저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 공부를 했어요. 그때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선 학교를 마쳐야 뭐든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학원이요? 밥 먹을 돈도 없는데 학원은 생각할 수도 없었어요. 독학으로 하루 18시간씩 공부했어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독하게 파고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6개월을 꾸준히 공부하고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또 다른 꿈을 꾸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3년 공부를 6개월 만에 마치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당당히 따낸 이기원. 결과적으로 조기 졸업을 한 셈이었다. 그것은 단지 졸업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그에게 최초의 자신감을 가져다준 일이었다.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 세상에 불신만을 품고 있던 소년은 이제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슴 한쪽에 담아두기 시작했다.  '내 장점이 뭘까.....?'. '장점을 살려서 튀어야 한다. 싸움만 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가 없어.' 소년의 눈은 TV를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야, 저 놈봐라. 사내 녀석이 미용사 한다. 미용사, 거참.... 그래도 월급이 500만 원 이라네? 그래도 저 짓은 안 한다. 남자가 이발소에 가야지 미용실에 가나?"

"잠깐, 월급이 500만 원?"

소년은 갑자기 TV로 시선이 모아졌고 두려움이 물밀 듯 씻겨 내려감을 느꼈다. '미용사.... 어렵다고 하는 것도 매력적이고, 남들이 어려운 거 싫어하니까 경쟁력도 더 있지 않겠어? 그래, 나는 더 어려운 것도 이겨왔으니 잘할 수 있을 거야. 꿈을 갖는 거야. 나도 이제 꿈을 갖는 거야.'  헤어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소년의 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건이 안 돼 꾸준히 개발할 수는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남보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였다. 남다른 센스와 감각을 요구하는 직업인만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으로 족했고, 더 이상 쓸데없는 잣대를 가지고 망설이지 않았다. '일단 도전할 목표가 정해진 이상 무조건 앞으로 나가는 거다!' 그는 그렇게 결심했고, 그 결심은 바로 행동으로 옮겨졌다. 


 

스무 살, 마침내 찾은 나의 꿈

하지만, 1980년대, 지금에야 많은 남성들이 미용분야에 진출해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남자가 헤어 디자이너를 한다는 건 쉽게 생각하기 힘들 때였다. 남자라면 당연히 이발소를 가야 하는 시대였고 미용일을 하겠다는 남자를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미용은 여자에게 국한된 직업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소년에게 남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었다. 쉽게 이루는 것보다 어렵게 이뤄내는 꿈이 더 값지고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그가 등록한 미용학원의 학기가 끝나갈 무렵, 그는 학원동기가 문을 여는 평택의 한 미용실에 합류했다. 큰 미용실에서 미용보조부터 시작해야 하는 힘든 과정도 없었고 벌이도 생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전이 없었고, 그 자리에 안주해서는 결코 최고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마침내 좁은 세상을 벗어나 큰 물에 발을 들여놓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벤츠가 아닌 벤치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들

미용사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했지만, 그가 발붙일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위 '시다'라 불리는 미용실 스텝보조로 취직은 했지만, 숙식 제공 없이 월급은 단돈 '3만 원'. 차비조차 되지 않는 액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항상 되뇌던 말이 있었다.

 

 '생생하게 상상하고 열렬히 원하며 진심으로 열성을 다해 행동하면 그것이 어떤 꿈이든지 반드시 이루어진다.'<폴 J. 마이어>

 

그래서 그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자신의 꿈을 '벤츠'로 정했다. 당시, 그가 생각한 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막연할 수도 있는 꿈을 뚜렷한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그는 지치고 피곤할 때마다 계속해서 벤츠를 타고 있는 멋진 장면을 상상했던 것이다. '벤츠 탈 정도로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가 되는 거야. 힘들 때마다 내가 탈 벤츠를 생각하며 참아보자고. 그럼 이루어지는 거야' 

 

그러나 일단 그것은 꿈이었다. 월급 단돈 3만 원으로는 당장 거리에 나앉아야 할 상황이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사돈의 팔촌이라도 찾아낸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동안은 지하철 역 내에서 밤을 지새우거나 눈에 띄는 벤츠가 아닌 벤치에 쓰러져 새우잠을 잔 적도 있었다. 그에게는 몸 하나 의탁할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은 물론이었다. 하루 이틀 굶는 건 오히려 일상이었다. 겉으론 강인한 인상을 풍겼지만, 그도 때때로 설움이 북받치곤 했다. 그 역시 스무한두 살밖에 먹지 않은 아직 어린 청년이었으니 말이다. 


 

깜깜한 암흑 속,  한줄기 희망

12시간이 넘는 미용실 근무시간은 가뜩이나 굶주린 그를 더욱 지치게 했다. 잠자리 역시 일정치 않아 얼굴은 점점 수척해져만 갔다. 그런데 그즈음, 운이 따랐는지 먼 친척뻘 되는 분을 찾게 되었다. 암흑 속에 비친 한줄기 희망이었다. 그는 그분이 운영하는 중국집을 찾아가 다른 건 필요 없으니 제발 잠만 자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달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기에 머리를 조아리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몇 달간만이라는 조건이었지만 허락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좋았다. 최악의 생활조건에서 다만 바람이라도 피할 지붕만 있어도 커다란 행운을 만난 기분이었다. 

"중국집에 배달원들이 잠을 자는 쪽방이 하나 있었어요. 어차피 저는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나 퇴근했으니 손바닥만 한 방이었지만,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됐으니까. 그 방에는 이불이 하나 있었는데 색깔이 까무잡잡한 군청색이더라고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까, 원래 흰 이불이었던 게 몇 년 동안 빨지 않아 시꺼멓게 변한 거였죠. 그래도 잘 방이 있고 이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했어요. 그나마도 서너 명이 되는 배달원들과 함께 써야 했는데, 추워서 조금이라도 이불을 끌어당길라치면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죠."  (3편에서 계속)


그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꿈을 '벤츠'로 정했다. 당시 그가 생각한 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막연할 수도 있는 꿈을 뚜렷한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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