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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산악인 오은선 (1), 선택은 또 다른 포기를 의미한다

by 드림비 2023. 3. 6.

 

산악인 오은선은?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에 성공하였으며, 일본의 전설적인 여성 산악인 다베이 준꼬에 이어 세계 7 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한 아시아의 두 번째 여성 산악인이다. 산을 선택하기 위하여 그 외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던 오은선 씨는 수원대학교 전산학과 85학번이다.  오은선 씨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박사이며, 지난 2018년부터 국립공원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오은선의 한걸음>이 있다. 

 

오은선 킬리만자로 등정
산악인 오은선, 2004년 케냐 킬리만자로 등정


오은선이 대학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찾은 것도 당연히 등산 동아리였다

 

꿈속에서 사는 사람

아파트 15층,

학생들에게 나눠줄 문제지와 학습지들이 잔뜩 들려 있었지만,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이미 수천수만 번 가파른 산을 오르고 내렸던 그녀이기에 15층 계단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습지 교사 5년 차인 오은선이 맡는 아이들은 저마다 성적이 올랐다. 학부모와 아이들도 그녀를 좋아했다. 더구나 주 3일만 일해도 경제적 어려움이 없을 만큼 안정적인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더없이 좋은 직장이었다. 하지만 허공에 떠 있는 듯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발걸음. 텅 빈 눈빛, 무언가를 향해 가야만 한다는 압박감은 최근 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학부모나 동료 교사들로부터 어디 아프냐는 얘기를 부쩍 듣게 되는 즈음이었다. 사실 이런 증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오은선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무엇을 부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미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에베레스트로 갔던 그녀였으니 주말 산행만으로는 턱없이 갈증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등 뒤로 산을 업고 목을 빼어 정상을 바라볼 때면, 그리고 바라고 바라던 그 품에 안길 때면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안기고 싶어 하는 산은 오은선을 쉽게 불러주지 않았다. 

 

어릴 적 살던 시골 마을.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두 세 시간이나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코끝에서 찰랑거리는 젖은 풀과 신발 사이로 스며드는 흙먼지는 어린 오은선에게 있어 정겨움이었다. 하지만 이후 도시로 올라와 생활하면서 어린 시절 그녀를 키워주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던 자연은 더 이상 곁에 없었다. 들꽃을 만지고 벌레를 관찰하고, 흙내음에 흠뻑 젖었던 산골 소녀는 빡빡한 학교 수업과 참고서에 갇힌 교실만큼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던 산소통은 바닥이 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에는 산소통의 존재를 잊는 순간까지 왔다. 하지만 자연은 그리고 산은 그녀를 잊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녀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것으로 첫 운을 떼었다.  


 

인수봉 정상에 오르다

오은선이 등산에 대해 처음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 소풍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도봉산에 올랐는데 당시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인수봉에 매달려 있는 많은 사람들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아이는 암벽 등반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 모든 이가 갈 수 있는 편한 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저 위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커서 저것을 꼭 해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로 튼실히 걸어 올라 정상에서 느끼게 될 산의 기운을 생각하며, 그녀는 무미건조한 학창시절을 버텨냈다. 그 꿈은 몇 년이 지나도 그녀를 꼭 붙잡고 있었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가장 먼저 염두에 둔 것은 바로 산악부가 있는 학교였다. 그러나 그녀는 산악부가 있어 그토록 가고자 했던 학교에 배정되지 못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또다시 몇 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오은선이 대학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찾은 것도 당연히 등산 동아리였다. 지금도 첫 등반을 생각하면 손끝의 감각까지 짜릿해진다고 했다. 

 

인수봉 정상에 도달해 두 발로 섰을 때, 그녀는 십여 년 간 가슴 속 깊이 짓눌려 왔던 큰 돌덩이를 끝이 보이지 않는 발아래로 과감히 내던질 수 있었다. 그래서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기가 더 어렵다는 산행이었지만, 펄펄 날 듯이 내려가는 그녀를 보고 산악 동아리 선배들도 감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가슴속, 그리고 몸속 깊이 박혀 있던 무거운 것들을 털어내고 왔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여성 원정대 모집 공고

욕심으로 산을 만나는 이들은 '산을 정복했다'며 으쓱 거리고, 산에 올곧게 순응하여 오른 이들은 '그저 산이 그곳에 있었기에 올랐다'라며 여유 있게 답변하고, 때때로 산을 강요받는 이들은 '다시 내려올 거 뭐 하러 올라가느냐'라고도 반문한다. 그렇다면 대체 그녀에게 있어 산은 어떤 존재일까? 무엇이기에 산골 소녀에서 서른아홉이 가까이 되도록 내내 그녀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우매할 수도 있는 질문에 오은선은 특유의 맑은 웃음을 띠고 이렇게 말한다. 

"산은 흙무더기와 바위 그런 것들이 오랜 세월 동안 압축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것이잖아요. 물론, 때로는 그 위에 내리고 또 내린 눈들로 덮여 있는 곳들도 있지만요.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고 두렵게 솟아 있어요. 오랜 시간 축적되어 압축된 그 위에 오르다 보면 굳어진 나의 장애들을 반성하게 합니다. 나의 지난 과오들, 내 안의 아집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위대함 앞에서 말끔히 떨궈낼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산에서 내리는 그녀의 마음이 가볍고 들 뜰 수밖에 없는 듯하다. 하지만 물고기처럼 팔팔거리고 새처럼 훨훨 날던 걸음은 계속되지 못했다. 누구나 이 사회에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만 하기에 오로지 산과 함께 대학 4년을 보낸 그녀는 이후 공무원 시험을 치렸다. 사실, 이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하는 일종의 보답이었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 온 뒤, 자상한 아버지는 오은선이 숨이 막혀할까 봐 종종 산에 데려가 주시고는 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산에만 빠져있는 그녀가 내심 불안한 게 부모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일하며 주말 산행이나마 즐길 수 있도록 공무원의 길을 택해서 걸었지만, 산은 그녀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예전처럼 그녀를 잊지 않고 이번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그녀를 불러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93 에베레스트 여성 원정대' 모집 공고였다. 설렘을 향한 그녀의 선택을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이 반기지 않은 것은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 그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에 붙어 겨우 안정된 사회인의 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박차고 산으로 나가는 것은 경제적 독립과 결혼의 의무가 부여된 한국 사회의 여성에게는 이해받을 수 없는 반항아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감하게도 공무원을 포기한 채,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선발하는 테스트에 응했고, 100여 명 넘는 지원자 가운데 발탁되어, 모든 산악인들의 꿈인 에베레스트행을 여성의 몸으로 현실화할 수 있게 되었다.


 

꿈꾸던 에베레스트를 내려와 다시 현실로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에베레스트를 갔다 왔지만, 그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오은선에게 있어 산은 위험스러웠지만 포근한 곳이었고, 날카로웠지만 치유의 힘을 가진 정원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가슴 떨리는 흥분 뒤에 찾아오는 허탈감처럼 그녀는 현실의 생활을 위해 다시 직장을 찾아 나서야 했다. 

 

안정적으로 일하며 주말 산행이나마 즐길 수 있도록 공무원의 길을 택해서 걸었지만,
산은 그녀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인터뷰텔링] 산악인 오은선 (2), 에베레스트 이후, 브로드피크 그리고 K2 등반으로

[1편에서 계속] 꿈꾸던 에베레스트를 내려와 다시 현실로 그녀가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바로 주말 산행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근무 조건이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곳이 학습지 회사의 가정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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