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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2023 WBC 감독 이강철 (2), 눈을 감으면 이루어지는 꿈

by 드림비 2023. 3. 10.

이강철 투수
이강철 투수, 10년 연속 10승 이상 대기록 달성

 

빛은 사라지고...

"인대가 끊어졌다니까. 수술해야 돼."

"수술... 않고는 안 되겠습니까?"

"안 하고는 안 돼."

"얼마나.... 오랫동안...."

"6개월 이상. 한 1년은 걸릴 거야. 재활 시작하려면."

이강철은 멍하니 병원문을 나섰다. 직업의 특수성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나 쉽게 너무나 간단하게 무릎 부상을 선고하는 의사가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모든 꿈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는 순간이 아닌가. 물론, 부상이 처음은 아니었다. 대학 다닐 때에도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으로 전남대학 병원에서 연골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같은 의사에게서 또다시 무릎 부상 선고를 받은 것이다.

 

원래 근육을 한번 다치게 되면 꾸준히 근육강화 운동을 해도 점점 약해지기 마련이다. 이강철의 경우에는 근육이 약해지면서 인대에 무리가 갔고, 그로 인해 결국 인대가 끊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강철은 1년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놀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구단에서도 그의 부상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되었다. 전남대학 병원에서 서울삼성 병원으로 그리고 다시 일본에 있는 병원으로 미국에 있는 병원으로... 그러나 한번 떨어진 선고는 번복되지 않았다. 불안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끝인가? 내 야구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그 심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최고의 자리에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심정. 오직 야구 하나만을 보고, 야구 하나만 제대로 할 줄 알며 이십여 년을 넘게 살아왔는데 이제 야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팔이 아니라 무릎부상이긴 했지만 그 역시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도 부담스러웠다. 수술받고 재활하는 데 시간을 다 잡아먹고 과연 남은 시간 얼마나 선수로 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대로 끝낼 순 없었다. 은퇴를 하기엔 아직 선수로서 야구에 남은 미련이 많았다. 다행히 긍정적인 희망을 안겨주는 이들도 있었다. 

"옛날엔 십자인대가 끊어지면 끝이었는지 몰라도 이젠 아니다. 재활만 잘하면 된다. 1년만 고생한다고 생각해라. "

여러 사람들의 조언, 특히 미국 병원에서 수술을 담당할 의료진들의 조언을 얻고 나서 이강철은 수술을 받고 재활 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세우게 되었다. '그래, 의지만 있다면 뭐든 해 낼 수 있어! 이번에도 기어코 난 해 낼 거야. 한눈팔지 않는 거야!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하자. 잘 되어갈 것이란 생각만 하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난 반드시 다시 일어날 거야!' 그렇게 강철은 다시 한번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수술에 성공하고 재활운동을 마친 뒤, 다시 마운드에 선 모습을 그려보았다. 지금껏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야구인생을 지탱시켜 온 할 수 있다는 믿음, 간절히 바라면 결국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기회를 잡는 힘, 지속적인 노력

고 2 때까지 강철의 키는 불과 165센티 남짓이었다. 이미 180센티를 훌쩍 뛰어넘는 타고난 신체조건을 자랑하는 동기들에 비해 불리해도 너무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역시 노력하는 자의 편인가 보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지나고 난 뒤 강철의 키는 그야말로 급성장했다. 운동을 쉰 한 달 동안 불과 165센티에 불과하던 그의 키가 180센티의 장성한 몸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었다. 키뿐만 아니라 몸무게도 보기 좋게 늘어서 순식간에 야구 실력도 따라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기본기를 갈고닦았는데, 거기에 파워까지 생기게 되니까 볼 스피드도 팍팍 늘던데요? 유연성에다 파워가 실리니까 공 끝도 매서워지고요."

구속이 시속 140킬로미터가 넘으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A급 투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었다. 마침내 고3이 되어선 황금사자기, 봉황기 대회 등 이름 있는 전국대회에서 팀을 우승시키고, 그 공로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면서 이강철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85학번. 프로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창설된 한국프로야구는 야구선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대 파란이었다. 야구를 잘해서 상급학교로 진학하고 국가대표가 되고 실업팀에 가서 직장생활을 하며 야구를 하는 것만이 최고의 목표였던 이들에게 더 큰 '꿈의 무대'가 생긴 것이었다. 야구만 잘하면 돈도 벌고 명성도 얻고 TV에도 나오고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스타로 살 수 있는 기회, 그것이 바로 프로야구의 등장이었다. 두각을 나타내는 고등학교 3학년 생 이강철에게 그런 프로야구에서 손짓이 없었을 리 없었다. 강철 역시 프로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항상 가난했던 탓에 일찍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들기도 했었다. 나중에 프로로 진출하면서 받은 계약금 전액을 부모님들의 집을 얻는 데 보태드려야 했을 정도로 돈에 대한 필요가 절실했던 때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강철은 망설임 없이 대학 생활을 선택했다.

"솔직히 그 당시엔 제 첫 번째 목표는 프로라기보다는 국가대표였거든요.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그 명예가 당장의 화려함이나 돈보단 더 크게 보였어요. 또한 캠퍼스 생활도 꼭 해보고 싶었고요. 프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갈 수 있는 거지만, 대학은 그럴 수 없잖아요."

고등학교 때 후보선수로 있으면서도 늘 소망해 왔던 국가대표에의 꿈이었다. 한 순간도 자신이 국가대표가 될 것이란 사실을 믿어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 덩그러니 벤치를 지키고 있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고등학교 1, 2학년 때 선배들의 뛰는 모습을 멍청히 바라봐야만 할 때도 그는 반드시 국가대표가 될 것이란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어디서 생겨난 배짱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황금 같은 대학시절

그가 들어간 회계학과에선 그가 10년 만의 첫 야구선수였다. 그래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활약을 기대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전원 숙소에서 동고동락하는 선수 생활도 다른 1학년들처럼 그리 많이 고달프지 않았다.

"원래 새로 들어온 새내기들에게 4학년생들이 한 명씩 붙거든요? 일명 딱가리라 해서 선배들의 수발을 들게 하는 거죠. 그때 저를 담당했던 선배님이 지금 LG 타격코치로 있는 유근열 선배예요. 1학년생들은 선배들 운동복이며 옷 빨래하는 게 제일 고역이었는데 유근열 선배는 옷을 잘 안 갈아입었기 때문에 빨래할 일도 별로 없어서 얼마나 편했는데요.(웃음)"

   

게다가 다른 고교 스타들이 대학 입학 후, 쉽게 주전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데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고민을 하던 것에 비해 일찍 주전으로 붙박이 할 수도 있었다. 대학 입학 후 첫 시합인 춘계 대학리그전에서 생애 처음으로 완투 완봉승을 거두었고, 리그가 끝난 뒤 5승 2세이브로 최우수 투수상도 받았다. 그 이후론 승승장구였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승리를 이끌어 냈고, 이제 그는 단순히 야구선수 이강철이 아니라 '진짜 잘 던지는, 무선운 놈' 이강철이었다. 학교에서도 그야말로 스타로 대접받았다. 어린 마음에 '영웅심리'에 사로 잡힐 수도 있었고, 충분히 거만을 떨며 우쭐해 할 수도 있을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강철은 나태해지지 않았다. 아니, 나태해질 수 없었다. 최고의 자리에서 안주하고 나태한 생활을 하다 금방 도태되는 이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다 알 듯이 올라가기는 힘든데 내려가기는 쉬운 법이거든요. 그래서 나태해질 수 없었어요. 조금 나태해진 것 같으면 제 자신에게 스스로 주문을 걸었죠. 좀 더 해야 된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시련

그래서 그는 대학생활뿐만 아니라 프로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절제를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친구들과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실 때도 내 기본은 '야구선수'라는 걸 잊지 않았다. 고된 훈련이 끝나고, 혹은 시합이 끝나고 모든 걸 잊고 즐기고 싶을 때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가 '야구선수 이강철'이라는 걸 잊지 않았다. 놀 땐 놀더라도 머리 한 구석에는 늘 야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하늘은 물론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그러나 때론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주며 인간을 시험하는 것도 또한 하늘이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이강철에게 바로 그런 뜻하지 않은 시련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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