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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홍혜걸, 이경미 (2), 시네마 천국

by 드림비 2023. 3. 9.

 

홍혜걸 여에스더
홍혜걸 여에스더 부부(이미지 출처:시사매거진)

알프레도 할아버지의 병사와 공주

"병사와 공주 얘기 알아요?"

그가 뜬금없이 그녀에게 묻는다. 

"시네마 천국 봤죠? 알프레도 할아버지가 사랑의 열병에 걸린 토토에게 병사와 공주 얘기를 해주잖아요. 혹시... 어떤 얘긴지 기억나요?"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니 주스 잔에 꽂힌 빨대로 입을 가져간다. 병사와 공주? 시네마 천국을 본 사람들 중에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영화를 보며 사랑에 관한, 그리고 정답이 없는 그 질문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아주 옛날에 국왕이 연회를 열었어요. 국내의 미인들은 전부 초대를 받았지요. 그런데 국왕의 호위 병사들 중 하나가 공주가 지나가는 걸 보고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병사는 가슴앓이를 시작하게 돼요. 공주와 일개 병사의 신분 차이라는 건 엄청나잖아요. 하지만 병사는 용기를 내어 공주에게 고백합니다. 공주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요."

그와 그녀의 눈길이 마주친다. 샛노란 오렌지 주스가 빨대를 타고 쪼르륵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공주는 병사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공주는 병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100일 밤낮을 발코니 아래에서 기다린다면 기꺼이 그대에게 시집을 가겠어요."

 

그녀의 눈빛이 잠깐 반짝하고 빛난다.

"병사는 쏜살같이 발코니 아래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하루, 이틀 또 10일, 20일이 지났어요. 공주는 창가에 서서 병사의 모습을 지켜봤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변함이 없었어요. 새가 똥을 싸도, 벌한테 쏘여도 병사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렇게 90일이 지나갔어요. 병사는 전신이 마비되었고, 곧 탈진 상태에 이르게 되었죠.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어요. 눈물을 억제할 힘도 잠을 잘 힘도 남아있지 않았던 거예요. 그런데... 드디어 99일째 되는 날 밤이 왔어요. 그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던 병사는..."

사실, 시네마 천국이라는 그 유명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성싶다.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그런데 그는 유독 짧은 알프레도 할아버지와 토토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예사롭지 않을 성싶은 그만의 기억과 아픔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병사는 100일째 되는 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거에요....."

"마지막 밤에요?"

99일 동안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꿈쩍도 하지 않고 공주의 방이 보이는 창가에 서 있던 병사가 100일째 되는 날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온기가 식어가는 커피잔에 손을 얹었다.

"그래요. 마지막 밤에요. 토토도 그렇게 물었어요. 알프레도 할아버지는 토토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루만 더 버티면 공주를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

토토는 지긋이 자신의 눈을 내려다보는 알프레도 할아버지에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글쎄, 왜 그랬을까? 99일 동안이나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는데.... 이제 단 하루만 더 앉아 있으면 될 텐데... 힘들어서였을까? 그러나 아무래도 그건 아닐 것 같았다.

"...... 이유는 나도 모르니 묻지 마라. 그리고 나중에라도 그 답을 알게 되면 꼭 얘기해 줘라. 알프레도 할아버지가 토토에게 그렇게 얘기하곤 영화는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게 되죠."

 

그는 남은 커피를 쭉 들이켰다.

"경미 양은 어떻게 생각해요?"

그녀는 두 손으로 주스 잔을 만지작거리다 머뭇머뭇 말문을 연다. 

"글쎄요..., 음.... 그건, 공주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을까요? 99일 밤낮을 기다린 남자가 단 하루를 남겨두고 사라졌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어요? 99일 정도면 병사의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을 테고, 제가 공주 입장이었다면, 아마도 그동안 수십 번쯤 감동했을 것 같은데.... 확인해 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알프레도 할아버지 말대로 정답은 없어요. 다만 제가 이 얘기를 왜 꺼냈느냐 하면요...."

 

진정한 사랑과 배려

그는 사람들과 사랑에 관한 얘기를 나누게 되면 한 번은 꼭 이 병사와 공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 사랑을 대하는 태도는 곧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것은 바로 배려였다고 말이죠... 병사는 배려를 한 거라고 생각해요. 공주에 대한 배려 말에요. 정확히는 공주가 한 약속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경미 양 말대로 99일이면 자신의 마음은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주의 마음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일 거고요. 그런데 말이죠, 만약에 100일째 되는 날 공주가 발코니 아래로 내려오지 않으면 어쩌죠? 공주가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어떻게 하죠? 경미 양은 지금 가능성이 거의 무한대로 열린 나이인지라 열 번, 스무 번을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이 나이쯤 되면 자연스레 알게 돼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적인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요. 아까도 했던 얘긴데, 원초적인 불공평이라는 게 있어요. 세상일이 자신의 의지대로만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안 되는 일들이 있잖아요? 경미양도 때때로는 느끼고 있을 거예요. 안 그래요?"

 

그녀는 3분의 1쯤 남은 주스를 얼음과 함께 입 속으로 털어 넣는다. 오도독, 오도독 얼음 씹는 소리가 난다. 그녀는 용돈을 벌기 위해 여름에는 액세서리 장사를, 그리고 겨울에는 찹쌀떡 장사를 했다.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는 한 달 전 간암선고를 받았고, 살고 있는 집은 경매에 붙여졌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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