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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산악인 오은선 (2), 에베레스트 이후, 브로드피크 그리고 K2 등반으로

by 드림비 2023. 3. 6.

 

 

산악인 오은선 이미지
산악인 오은선, 에베레스트 첫 등정 이후 다시 브로드피크를 향하여


[1편에서 계속]

산악인 오은선

만약, 꼭 산엘 가야 한다면 그냥 사표를 내도록 하세요

 

꿈꾸던 에베레스트를 내려와 다시 현실로 

그녀가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바로 주말 산행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근무 조건이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곳이 학습지 회사의 가정방문 교사였다. 에베레스트 첫 등정을 통해 오은선은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녀는 현실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훈련을 병행할 수 있는 학습지 교사라는 직업을 생각해 냈다. 학습지 교사는 주말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기에 좀 더 집중력 있는 훈련이 가능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이다. 열망은 심장을 타고 온몸을 흘러지나 이미 뜨겁게 에베레스트 봉우리에 가 있었지만, 내디딜 수 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다리와 가쁜 호흡은 그녀를 멈추도록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산이 그녀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산에 대해 가졌던 모든 환상과 꿈을 산산이 부수고 체념했을 것이다. 과거의 추억으로만 간직한 채로 말이다. 다만, 그녀는 첫날밤 새색시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슬며시 감추듯, 산이 자신의 모습을 보일락 말락, 닿을락 말락 그녀에게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곧 나중에 다시 오라고, 호기심이 아니라 깊은 이해와 들뜬 열망과 갈증으로 다시 찾아오라는 것만 같았다. 따라서 스물일곱의 처녀는 가슴 가득 안지 못했던 에베레스트 정상을 떠올리며,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덧 학습지 교사 생할 5년

"저...... 휴가를 좀 신청하고 싶은데요....."

사실, 잘 떨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이미 여러 번 휴가를 신청했던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말이다.

"또, 산 때문인가요? 글쎄.....이번에는 좀 곤란하네요...... 만약, 꼭 산엘 가야 한다면 그냥 사표를 내도록 하세요."

오은선을 관리하는 담당국장은 더 이상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2~3주 남짓 산엘 다녀오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동안 참 좋은 직장이었는데.... 특히나 아이들을 좋아했던 오은선에게는 정말 좋은 직장이었다. 오은선은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어려워요. 그렇게 꼭 산엘 가야만 하나요?"

국장은 오히려 오은선에게 마치 산을 포기하라는 듯한 말투였다. 

"알겠습니다..... 사직서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오은선은 이제까지 그녀가 해왔던대로 산에 오르는 것과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할 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맘에 들어했던 직장을 다시 한번 포기해 버렸던 것이다. 

 

산을 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면서 오은선은 그동안 정들었던 아이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고했다. 자연과 산을 가까이하며 푸른 기운을 가졌던 그녀는 주중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면 그 기운을 아낌없이 나눠주곤 했다. 그리고 오은선을 선생님으로 둔 아이들은 그 기운을 받으며, 더욱 건강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기에 아이들과 그녀 사이의 우정은 더욱 각별했다. 마지막 수업을 하며 이제 어디로 가시냐는 아이들의 말에 오은선을 눈을 빛내며 말했다.

"브로드피크!"


 

인생은 극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삶이라는 게 늘 극적인 성공을 이루는 것만은 아니다. 오랜 잠복기를 거쳐 브로드피크로 향했지만, 엎드려 있었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 아니면, 너무 일찍 뛰어올랐던 탓일까? 1999년 그 해의 산행은 유난히 어려웠다. 그녀는 이미 브로드피크에 도착했을 때, 불안의 기운을 감지했다.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곳이건만 산은 덮쳐올 듯 위압적이었으며, 낙석 떨어지는 소리가 쟁쟁하게 울리며 그녀를 공포스럽게 했다.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오은선이 팔에 낙석을 맞아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게다가 함께 간 산악부팀원 한 명이 실족사를 당해 등반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캠프에서 짐을 옮겨내야 하는데 눈앞에 있는 암벽 지대를 짐과 함께 지나갈 자신조차 잃어버렸다. 오은선은 생각을 거듭하다가 암벽 초입에 눈을 파서 짐을 넣어두고 하산을 했다. 처음으로 임무 수행을 하지 못했던 때이기도 했다. 

 

오은선은 당시 내려오던 길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고 했다. 분명 산이 자신을 부른다고 생각했고, 확신했기에 다시금 큰 맘을 먹고 모든 것을 버리고 왔던 길이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의 답답한 절규에 산은 냉담하게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같은 해에 갔던 마카루 등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함께 등반했던 세르파가 추락사했던 것이다. 세르파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마을로 내려간 뒤, 다시 산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그 동안 눈사태가 나서 머물던 베이스캠프가 모두 눈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만약, 마을로 내려가 세르파의 장례를 치르지 않았더라면 어떤 상황이 닥쳤을지 생각하니 섬뜩하기만 했다. 

"그때부터 산의 두 가지 얼굴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오은선은 당시를 떠올렸다. 한 때, 산은 그녀에게 있어 치유의 어머니였고, 위안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99년 등반에서 은선이 느낀 산은 사람의 생과 사를 넘나들게 만드는 위협적이고 날카로운 무기와도 같은 존재였다.

"어쩌면 너무 늦게 깨달은 건지도 모르죠. 이미 감수했어야 하는 건데 말에요."

간절히 원하는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그 매력만큼이나 위험이 함께 따른다는 것을 곱씹어 깨달은 그녀였다.


 

세르파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간 베이스캠프

수수께끼를 품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녀는 또 한 번 자신의 현실을 지키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생각의 중심에는 항상 산이었다.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산을 갈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공무원이라는 직업도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해오던 학습지 교사도 버린 그녀였다. 그녀는 작은 음식점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자기의 사업이었으니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산에도 갈 수 있을 것이고...., 그녀는 그렇게 쉽게 생각했다. 칼국수에 두부 요리, 스파게티까지 해봤지만 그녀는 자신의 음식 솜씨가 그다지 좋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었다. 오은선은 음식점을 경영해 가기 위해 열심히 요리를 배웠다. 나중에 남편이나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해 주어야지 하는 다부진 각오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처음하는 장사는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산은 사람의 생과 사를 넘나들게 만드는 위협적이고 날카로운 무기와도 같은 존재였다

 

 

 

[인터뷰텔링] 산악인 오은선 (3), 한국 여성 최초의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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