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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3), 마침내, 큰 보람

by 드림비 2023. 3. 19.

 

삼성전자에서 제시한 스펙이 효율적이라며 HP에서 지지를 하고 나선 것이다. 
바싹바싹 타들어가던 압박감에 시달리던 이정배 박사는...

이정배 사장
이정배 삼정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


[2편에서 계속]

이정배 사장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진공관의 원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흠..... 자네는 물리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전자공학과를 지원한 모양이군? 그런 학생들이 가끔 있지....."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그의 마음을 읽고 계셨을까? 아마도 3 지망에 물리학과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 짐작을 하신 모양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전자공학을 하다 보면 기초과목을 많이 들어야 할 거야. 물리학과에 가서 들어야 할 과목들이 많으니까...."

민홍식 교수는 그의 고민을 그렇게 친절하게 씻어내 주었다. 그 면접을 끝내고는 마침내 안심이 되었다. 비록, 물리학과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삼성, 표준이 결정되면 그에 따라 제품을 만들기에 익숙했던 회사

1996년, 그 전 해에 256M DRAM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이미 삼성전자는 반도체 메모리 DRAM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반도체 설계분야, 특히 신규 제품의 사양결정 과정 등에서는 그만한 리더십을 확보하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미국이나 일본의 업체들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결정된 제품 사양에 따라 빠르고 정확하게 설계와 제조를 하는 것이 그 당시 삼성전자의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정배 박사가 참여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제덱 회의에서 삼성전자는 이전과는 다르게 나름대로의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 업체들에서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회의에서 새로운 스펙(사양)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또 몇 달이 소요될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업체에서는 일본의 NEC, FUJITSU 등의 의견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삼성에서 제시한 의견에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전까지 제덱 회의에서 삼성의 목소리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삼성은 반도체 공정에서는 충분히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회사였지만, 제품의 스펙을 결정하고 설계하는 분야에서는 아직도 그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삼성은 제덱에서 표준이 결정되면 그 표준에 따라 정확하게 제품을 만들어 내는데 익숙해 있던 회사였다.

 

그러나 1996년 가을 이후, 제덱 회의에서 이정배 박사가 합의를 해주지 않음으로 해서 만들어낸 혼선은 1년이 넘게 지루한 논쟁을 계속해가고 있었다. 그는 속이 탔다. 만약에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크게 확대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정배는 그의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가 제안한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분명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입술을 바싹바싹 태우게 하던 그 문제가 마침내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표준안이 저희 쪽 안으로 기울기 시작한 건 HP(휴렛팩커드)에서 우리 안을 지지하고 나섰을 때부터였죠."


 

가능하면 넓게 배워라. 기본을 이해하는데 모든 것을 투자해라

면접관으로서 전자공학과 지망생 이정배에게 안심을 시켜주었던 민홍식 교수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가 대학2학년이 되는 때였다. 대학 1학년을 허겁지겁 그저 얼떨떨한 분위기에 휩싸여 보낸 뒤였다. 

"가능하면 넓게 배워라. 그리고 가능하면 기본을 이해하는 데 모든 것을 투자해라." 

2학년이 된 이정배에게 민홍식 교수는 짧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기초를 닦는데 주력하라고 그러면 훗날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또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응용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커리어 패스까지 그려가며 따뜻한 조언을 해주었다. 

 

물론, 민교수는 이정배뿐만이 아니라 그가 가르치는 모든 학생들에게 그렇게 강조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정배에겐 민교수의 그 말은 하나의 굳건한 신념이 되었고, 학문을 탐구하고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지침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정배가 생각해 왔던 것이기도 했었다. 

"당시 주변 분위기가 어땠느냐 하면.... 나라에서는 첨단기술 분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지만, 이공대생들은 대부분 교수가 돼 안정적인 가운데 학문을 계속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었지 일반 기업체에 들어가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안 했던 것 같습니다. 괜히 수준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졸업 후 진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이공계 공부를 즐겼습니다. 역시나 나중에는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기본만 잘 닦여 있다면, 변화무쌍한 첨단기술업계의 흐름을 쫓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아니, 앞서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죠."


 

마침내, 큰 보람

그는 넓게 공부하려 했다. 가능하면 기초적인 원리를 공부했다. 가장 기초적인 것을 알고 든든한 기둥을 세운다면, 그 뒤엔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자공학과 수업뿐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물리학과, 수학과 등 다른 학과 수업을 들으려고 했다. 뚜렷한 원칙이 세워지고 나니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물밀듯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온 다양한 지식들은 하나의 기조아래 일사불란하게 정돈되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1년 넘게 지속 돼온 지루한 논의가 결론이 나는 순간이었다. 삼성전자에서 제시한 스펙이 더 효율적이라며 HP에서 지지를 하고 나선 것이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이정배 박사는 바싹바싹 타들어가던 그 압박감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보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4편에서 계속]
 

[인터뷰텔링] 삼성전자 이정배 사장 (4), 새로운 도전, 반도체 설계

이후로 삼성은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도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죠 [3편에서 계속] 마침내, 큰 보람 "이후로 서서히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정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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