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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2023 WBC 감독 이강철 (1), 세계월드베이스볼 클래식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by 드림비 2023. 3. 10.

이강철 감독
이강철 2023 WBC(세계월드베이스볼 클래식) 감독(이미지 출처: MK스포츠)

 

이강철 감독은?

이강철 감독은 2005년까지 기아 타이거즈에서 현역 최고령 투수로 뛴 투수였다.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라는 전무후무할 것 같은 대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는 1996년 코리안 시리즈 MVP였다. 선동렬이 가지고 있던 대기록을 깨뜨리며 탈삼진 1,700개를 최초로 기록한 이강철 선수는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85학번이다. 

2018년부터는 KT WIZ 감독으로 선임됐으며, 2022년부터는 2023 WBC, 세계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의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999년 전남대학 병원

강철은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발 아니기를.....아닐거야. 그래, 절대 아닐 거야....' 전날까지 컨디션이 좋았다. 몸이 훨훨 난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단지 무릎이 좀 결린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다 무언가 '뚝'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한순간에 밀려오는 통증!!! 말로만 들었던 '끊어질 듯한 통증'이 바로 이건가 싶었다. 무릎에서 올라오는 열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끊어진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나 보내주라."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고 싶다는 강철의 말에 트레이너는 애써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에이, 형, 그냥 염증 생긴 것 같은데요?"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뭔가 이상해..... 심각하게 아픈 것 같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내심 트레이너의 말처럼 단순 염증이기를, 제발 별일이 아니기를 빌고 또 빌었다. 이제 비로소 절정의 순간을 맛보았다고 생각했다. 전무후무한 기록까지 달성했다. 투수로서 10년 연속 10승 달성에 10년 연속 세 자릿수 탈삼진이라는 대기록도 세웠고, 서른다섯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진 에이스와 맞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 올라선 정상의 자리인가? 10년 연속 10승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넘어 11년 연속, 15년 연속의 기록까지 가고 싶었는데....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아닐거야...나는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잘할 수 있을 거야...'

 

흔들리는 무릎을 부여안고 애써 마음을 굳게 먹어보았다. 항상 모든 것을 잘해왔고, 잘할 것이라는 자부심마저 없었다면 쓰러질 것만 같은 초초한 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특별하다

광주 서림초등학교 5학년 생 이강철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야구부를 찾았다. 야구라면 흔히 말하듯 '밥 먹다가도 벌떡' 일어나실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셨다. 강철의 형도, 강철의 사촌형도 모두 아버지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이 강철이었다. 멋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연습을 했다. 뛰라면 뛰었고, 던지라면 던졌다. 야구에 대한 재미보다는 야구부라는 한 '조직'에 속해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야구복을 입은 게 참 멋져 보여 좋았다. 게다가 첫 연습부터 소질이 있다는 칭찬도 들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게 어린 마음에도 자신이 특별한 누군가가 된 것만 같아 기분 좋았다. 그 이유만으로도 고된 훈련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야구가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투수로 시작하진 않았다. 무등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투수라는 이름으로 마운드에 섰다. 운명이 그를 이끌었을까? 쭉 2루수를 맡았었는데, 팀에 쓸만한 투수가 없었다.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본 감독님이 그나마 속도를 내는 것 같다고 판단하셨는지 투수를 시키셨다. 2루수의 송구 습관이 굳어져 있었던 터라 저절로 '언더드로우 피처'가 되고 말았다. 2루수에서 투수로의 변신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동안 쭉 기본기를 중요시했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었던 게 제가 진학했던 광주 서림초등학교, 무등중학교, 광주일고, 세 학교 모두 기본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탄탄하게 가르쳤단 사실이죠. 사실 요즘 새로 입단하는 선수들이나 심지어 메이저리그에서 건너오는 용병들 중에도 기본기가 하나도 안 갖춰진 이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게 모두 성적 지향적인 운동을 해 왔기 때문이죠."

남들이 '야구를 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까?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로 고민하는 순간에도 그는 한 번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은 고등학교에도 가고 대학교에도 가고 국가대표도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당시에 '주간스포츠'라는 이름의 야구 잡지가 있었거든요. 그 잡지에 실린다는 건 야구선수로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야구를 하는 아이들에게 있어 잡지에 실린 선수들은 하나의 선망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전 아니었어요. 다른 선수들 실리는 거 보면서, 이 정도면 나도 나갈 수 있겠다 생각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도대체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그땐 자신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난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알지 못할 자신감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강철의 그 특별함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조금씩 꺾이게 되었다.

 

나는 해내고 만다

고등학교는 달랐다. 중학교 때까지는 사실 야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평생 야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그다지 없었고, 그저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물 주전자 나르라면 날랐고, 시합 나가라면 시합 나갔다. 팀 내에서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수비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무난하게 팀의 주전으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고, 3학년이 되어선 팀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모든 게 달라졌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불과 1, 2학년 차이로도 하늘과 땅의 간극같이 멀게만 느껴지는 학교 선배들부터 함께 운동장을 구르는 동기들까지 모두 '경쟁자'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지게 되었다. 동기들 중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아니면 잘린다!'라는 위기의식이 강철의 온 마음을 지배했다.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가져 본 '위기의식'이었다. 중학교 때와 달리 고등학교에선 실력미달은 곧 야구부 탈퇴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하기 싫어 그만두는 게 아니라, 실력이 없어 잘린다는 건 수치였다. 자신은 특별하다는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어!"

강철은 이를 악물고 열심히 뛰었다. 시합도 못 뛰고 선배들에게 맞고, 후보로 열심히 물 주전자를 나르는 고달픈 1학년의 생활 속에서도 항상 '시합을 뛰고 말겠다, 꼭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하지만 강철보다 잘하는 이들은 많이 있었다. 선배뿐만 아니라 동기들 중에서도 일찌감치 '주간스포츠'에 실릴 만큼 야구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강철은 절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자신의 처지를 당당하게 인정했다. 다른 사람보다 못한다는 걸 실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저녁 운동으로 다른 사람과의 실력격차를 줄여 나갔다.

"저 자신이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내가 기본기는 잘 돼 있는 걸.... 그럼 필요한 게 뭐냐? 단지 파워, 즉 힘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힘을 키우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남들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강철은 저녁운동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고, 매일매일 운동에 몰두하게 되었다. 물론 경쟁의식도 있었다. 특히, 그 당시 이미 주목받는 신예였던 같은 팀의 박준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강철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선배들이 잘하는 건 그다지 부럽거나 샘 나지 않았는데 동기들이 잘 하는 건 솔직히 부럽기도 하고 질투의 마음도 생겨나곤 했다. 박준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촉망받는 신예 야구선수였다. 때문에 조계현, 박노준, 유중일, 고등학교 선배 문희수 등 나이 차이는 별로 안 나지만 이미 유명 야구선수로 자리매김을 한 선수들이 주로 실리는 '주간스포츠'같은 잡지에도 나가고 무슨 대회가 있으면 기대주로서 신문지면을 대문짝만 하게 장식하던 스타플레이어였다. 부럽지 않을 리 있겠는가? 더 잘하고 싶었다. 진짜로... 너무나 간절히... 그런 부러움과 라이벌 의식 때문에 강철은 자기 훈련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남이 뭐라든 말든 꾸준하게 운동을 계속했다. 학교에서 연습이 끝나면 집에 가서 밥 먹고, 저녁에 다시 학교로 가서 운동하는 일과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했다. 

 

빛은 사라지고....

1999년 전남대학 병원. 의사와 마주 않은 이강철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네? 뭐라고요?"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어. 수술해야 돼."

"네? 다시 한번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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