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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연예인 인터뷰텔링

[인터뷰텔링] 산악인 오은선 (4), 아...! 에베레스트 그리고 박무택 대장

by 드림비 2023. 3. 7.

 

산악인 오은선
산악인 오은선, 아....! 에베레스트


[3편에서 계속]

산악인 오은선

무택이는 제가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암벽에 매달려 있었어요.
이미 숨진 상태였죠. 설맹 때문이었던 것 같았어요

 

로프에 숨진 채 매달려 있던...... 박무택..... 대장

정상을 얼마 앞두지 않아 북동릉 루트 가운데서도 가장 어렵다는 8,750미터의 두 번째 스텝을 올라서자마자,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에서 박무택 대장이 로프에 숨진 채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익숙한 형체의 사람, 그리고 그가 이미 죽은 박대장이라는 사실, 또 자신은 다가갈 수 없는 암벽에 매달려 있는 그를 보는 순간, 오은선은 오열했다. '나쁜 놈, 산이 그렇게 좋았단 말이냐.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나더라 어쩌란 말이냐."

쾌활한 성격의 박대장은 오은선을 선배로 모시면서 따르곤 했던 아끼는 후배였다. 그는 생전에 10번 산을 가면 1번은 죽을 수 있다고 말했던 사람이었고, 그때가 11번째 등반이었다. 정상을 무산소로 정복하고 하산하던 중에 탈진과 설맹(눈에서 반사되는 햇빛으로 각막이나 결막에 염증이 생겨 앞이 안 보이는 현상)이 함께 온 것이었다. 평소 인상을 쓰면 이마에 굵은 주름살이 잡히곤 했던 박무택은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신이라도 거두어주고 싶었지만 도무지 다가갈 수 없는 곳이었다. 

"무택이는 제가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암벽에 매달려 있었어요. 이미 숨진 상태였죠. 설맹 때문이었던 것 같았어요. 햇빛과 눈에서 반사된 자외선 때문에 고글을 꼭 끼고 있어야 하는데 벗고 있었어요. 왜 그랬는지 안타깝고 원망스러웠어요. 나는 가망이 없다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다른 대원들만 내려 보냈던 거죠. 그렇게 사랑하던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혼자 산에 남으면 어떡하겠다고..."

 

 

인터뷰를 하면서 그전까지 쾌활하던 그녀가 그때를 회상하면서부터는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며 급기야 울컥 울음을 터뜨렸다. 두고두고 한이 되는지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아직까지도 안타깝게 내리 감은 속눈썹 위에까지 하얗게 눈이 쌓여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기에. 하지만, 슬프다고 해서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일단 베이스캠프에 이 사실을 알린 뒤 '무택아, 널 두고 그냥 올라간다. 제발 도와다오'라고 울면서 정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몸 안의 눈물을 다 쏟아내고 나서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렵다. 이미 죽은 박대장이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사고사 한 것을 본 그녀이기에 긴장감은 더 했다. 그녀가 지고 있던 산소통 두 개는 기운이 다 빠져버린 그녀의 힘으론 너무 버거웠다. 산소통 하나로는 부족할 게 뻔했지만 지고 있던 하나를 버렸다. 정상이 눈을 밟고 난 후였지만 죽음의 신은 하산하는 그녀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산소가 떨어지자 손발이 무섭게 저려오기 시작했다. 캠프에 남아있던 팀원들이 무선으로 안부를 물어와도 대꾸할 힘으로 한 걸음 더 걸었다. 산소 부족 때문에 통상 4 시간 정도 걸리는 캠프까지는 무려 11시간이 걸렸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렵다

온몸에 무거운 쇳덩이를 매단 듯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일이 커다란 돌 하나를 옮겨놓는 기분이었다. 눈꺼풀은 자꾸만 감겨와 순간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다. 딸이 그저 조금 높은 산에 올라간다고만 생각하셨던 늙으신 부모님이 흰 눈 사이로 영상처럼 떠올랐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데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도 하고 때로 부부싸움도 하고 예쁜 아이도 낳아 알콩달콩 살고 싶었는데, 여성 원정대원으로 지원했던 몇 해 전,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묵묵히 침묵만 지켰던 한 남자도 기억 한 편을 스쳐 지나갔다. 지난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지만 앞에는 오직 끝없는 눈길뿐이었다.   

 

눈으로 덮인 이 산속에 나는 왜 홀로 남아 있는 것일까. 산소통은 진작 바닥이 나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호흡조차 힘들었다. 사납게 불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몸은 넘어질 듯 휘청거리다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순간 산 위에 남겨두고 돌아섰던 박무택 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되지. 외롭게 죽어간 그를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야 돼.' 그녀는 울컥 북받치는 눈물을 꾹꾹 눌러 삼키며 자꾸만 눈 속으로 파고드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겼다. 눈앞이 희미했다. 그녀는 점점 가빠지는 숨을 힘겹게 내쉬며 눈을 비벼 보았다. 저만큼 캠프의 천막이 조그맣게 망막에 맺혔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하지만 그녀는 캠프를 눈앞에 두고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눈이 스르르 열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대원들의 모습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대원들은 스위스팀 세르파가 쓰러진 그녀를 다행히 발견해 캠프에 실어왔고, 그녀가 하루를 꼬박 잠만 잤다고 말해주었다. 극적으로 살아난 셈이었다. 산에서 내려온 뒤, 한국 최초로 여성으로서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이라는 이름 아래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대장의 사고를 '때론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로 미화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산에 미쳐서 산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갈망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 산행을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자신도 그런 상황을 직면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산으로부터 오랜 시험과 단련을 받아온 그녀에게 있어 죽음의 공포는 작은 존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둠의 기운은 물러가라. 케냐 킬리만자로 등정

그녀는 2004년 8월 케냐의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했다. 너무도 까마득하고 힘든 길이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고 한다. 뒤를 돌아보면 다시 와야만 할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을 때, 무언가의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았던 한 여인처럼 그렇게 오은선도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산의 뒷모습을 보는데 무척 고독해 보이더군요. 홀로 남겨져 있는 이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올라갈 땐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는데 막상 뒷모습을 보니 또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더라고요. 참 힘들었지만 다른 산악인들에게도 킬리만자로는 꼭 한 번은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산이죠."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에 따르는 피로와 고통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고통이 있어 열매는 더 아름답다. 올라갈 때는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되돌아서면 바로 그리워지는 존재. 그녀에게 산은 늘 그랬다. 

 

오은선은 그 뒤 산악인의 경력을 인정받아 영원무역의 등산코너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생활을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질 필요 없이 전문 산악인으로서 회사 홍보와 어드바이스를 하고 등정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를 위해 하나를 포기했지만 결국에는 모두 얻게 된 셈이다. 

 

외교관이 되겠다는 어릴 때 꿈처럼 그녀는 산악인으로서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 호주 코지우스코(2,228미터) 등반에 성공했으며 이제 7 대륙 최고봉 완등에 있어 남극의 빈슨매시프(4,897미터)만을 남겨두고 있다. (참고: 2004년 12월 등정 성공). 그녀는 1975년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일본이 전설적인 여성 산악인 다베이 준코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여성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자가 되었다. 160센터도 되지 않는 작은 키, 50킬로 그램도 되지 않는 갸날픈 체구의 그녀. 산에 더 가까기 가기 위해 7대륙 최고봉 완등 계획을 세웠다는 그녀는 남자도 하기 힘든 고산 등정을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이뤄가고 있었다.

 

여성이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산행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손을 가슴에 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각자는 우주에서 가장 귀한 각각의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 귀한 존재들이 인생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공기처럼 저의 설렘을 따라 산의 부름에 응하는 거고요."

산을 생각하는 동안 가쁘게 뛰고 있을 그녀의 심장박동까지 전해져 오는 말이다.

어둠의 기운은 물러가라. 대지의 여신이 춤추며 나간다. 끝

 

다음은 홍혜걸 기자 편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인터뷰텔링] 홍혜걸, 이경미 (1), 병사와 공주

홍혜걸은? 의학박사이며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와 논설위원을 지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92년 언론계 최초로 의사출신의 의학전문기자가 되었다. 우리 국민들이 평균수명을 향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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